마크 로스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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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에서 1930년대 시기동안 마크 로스코는 누드, 자화상, 인물이 있는 내부정경, 도시와 자연경관 등을 그린 수백 점의 그림을 종이와 캔버스에 남기고 있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에서 발견되는 형태의 고의적 변형과 물감의 엄격한 적용은 몹시 선망한 아프리카와 대양주 미술, 어린이 미술과 같은 몇몇 비서구 시각 전통이 공유한 특징들이다. 드로잉과 회화의 재료와 도구에 대한 초창기 실험적 시도는 흑연, 잉크, 투명/불투명 수채, 유채를 포함한 많은 소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마크 로스코의 초기 전시회에는 야외 풍경을 그린 ‘무제’(풍경화)와 같은 [[수채
'''과도기: 1940년대'''
자신의 예술이 인간조건의 비극성을 표현하기를 원했던 마크 로스코는 "이제 누구도 형상을 훼손하지 않고는 사용할 수 없는 때가 왔다"라고 말했다. 1940년 즈음 마크 로스코는 면 분할된 영역 속에 위치한 반복되는 형태와 심하게 분절된 인간 형상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 ‘무제’와 같은 일련의 회화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가 진행될수록 마크 로스코의 이미지는 더욱
1947년은 바야흐로 마크 로스코의 회화에서 모든 구상적 이미지는 다 사라지고 대신 느슨하게 정의된 "다층 형상"이라 불리는 색면의 비객관적 구도가 등장한다. ‘작품 9번’이 대표하는 다층 형상의 시기는 1947년에서 1949년까지 지속되며, 이 시기 마크 로스코의 작품 세계는 가장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 캔버스화의 방향과 모양, 그 위에 창조된 형태, 색조 범위는 구도상 절제되고 극도로 복잡한 색면을 특징으로 하는 마크 로스코 독특한 양식의 기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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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경 마크 로스코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구축하여 ‘단순한 표현 속의 복잡한 심정’이라는 그의 이상을 실현하였다. 이들 작품은 보통 1955년작 ‘무제’에서 나타나듯이 두개에서 네개의 직사각형이 큰 색면 위에 수직으로 배열되어 있는 구도를 보인다. 이런 형태 안에서 마크 로스코는 폭넓은 색채와 색조, 여러가지 양식적 관계를 활용해 극적이고 소박하며 시적이기도 한 다양한 분위기와 효과를 자아낸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은 1957년 ‘무제’에서 볼 수 있듯이 1950년대에 상당히 어두워졌다. 1958년 무렵에는 화려한 색상 대신 붉은색, 갈색, 고동색, 검은색 등 어두운 색을 선택하여 사용하였고, 특히 생애 마지막 10년동안 몰두했던 벽화작업에서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진다.
1968년 대동맥류가 발병한 후 마크 로스코는 주로 커다란
== 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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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아트 스튜던츠 리그에서 맥스 웨버의 회화 수업을 듣다. 웨버의 영향으로 표현주의의 양식으로 캔버스나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다. 채색하기 전에 언제나 밑그림을 그리곤 했다.
*'''1926년''' 웨버 밑에서 계속 [[회화]] 공부를 하다.
*'''1929년''' 브루클린의 유대인 센터 아카데미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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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신화에서 영감을 얻은 주제로 종이나 캔버스에 그리다.
*'''1944년'''
*'''1945년''' 마리 앨리스(‘멜’) 비스틀과 재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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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뉴욕의 시그램 빌딩 벽화 제작을 맡게 되다.
*'''1961년''' [[하버드
*'''1964년''' 존과 도미니크 드 메닐에게 고용되어 휴스턴의 새 예배당을 위한 기념비적 벽화를 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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