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코트의 서약: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편집 요약 없음
11번째 줄:
[[6월 20일]] 국민의회는 회의장을 베르사유 궁전의 테니스코트 건물로 옮기고, 자신들의 요구가 승인되어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는 이 의회를 해산하지 않는다고 선서했다.
 
[[6월 24일]] 이 국민의회에는 [[제3신분]]에 가까운 많은 [[로마 가톨릭]] [[사제]](왕정시대 프랑스의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추기경]]등의 고위 성직자들은 정치에 관여하는 등 교회권력을 형성했으나, [[로마 가톨릭]] [[사제]]들은 [[민중]]들을 대상으로 목회했으므로 진보적인 사고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와 [[자유주의]]적 [[귀족]] 47명도 합류했고, [[7월 9일]]에는 [[헌법제정국민의회]]라 칭하여, 인민의 최고입법 기관으로서 프랑스 헌법 제정에 착수했다.
 
테니스코트 서약이 이루어진 곳은 현재에도 베르사유 시내에 존재하고 있다.
 
==관련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