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미도르의 반동: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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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날 밤 [[프랑수아 루이 부르동]]과 [[폴 바라스]]가 시청에서 농성 중이던 로베스피에르파를 습격해 로베스피에르의 오른팔 [[생 쥐스트|루이 앙투안 드 생쥐스트]]의 친구 [[필립 르바]]는 자살했고 동생 [[오귀스탱 로베스피에르]]는 창문에서 뛰어내려 도망치려 했으며 로베스피에르의 동료 [[조르주 쿠통]]은 떠밀려 계단에서 곤두박질 쳤고 로베스피에르도 턱에 총을 맞았다.
 
공포정치로 국가를 안정시키고자 했으나 오히려 국가를 혼란에 빠트린 로베스피에르는 [[7월 28일]] [[푸키에 탕빌탱빌]]에게 고발당해 자신이 혁명 정신과 국가 안보를 운운하며 많은 사람을 죽였던 도구인 [[기요틴]]에 올라가 생쥐스트, 쿠통, 오귀스탱 및 18명의 동료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로베스피에르의 죽음으로 혁명 주도권은 [[부르주아]] 계층, 지롱드 파의 온건파들이 쥐게 되었고, [[총재 정부]], [[통령 정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등장까지 테르미도르의 반동을 기점으로 새로운 국면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