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루이 다비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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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파리 (도시)|파리]]에서 출생하였고, 일찍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질을 발휘하여 1774년에는 [[로마 상]]을 받았다. 이듬해 [[로마]]로 유학하여 고대 미술에 큰 감명을 받았다. 역사화를 그려 고전주의의 지도자가 되는 한편, 근대 회화의 시조가 되었다. 다비드는 이후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의 친구이자 [[프랑스 혁명]]의 전폭적인 지지자가 되었고, [[프랑스|프랑스 공화국]]하에서 사실상 예술의 독재자 역할을 하였다.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자 투옥되었으나, 석방된 이후 [[나폴레옹 1세]]의 정치 체제에 협력했다. [[프랑스 혁명]] 때에는 문화재 보호에 앞장섰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후 궁정 화가가 되어 <나폴레옹 대관식>을 그렸으나 뒤에 국외로 추방되었다.
 
== 특징 ==
 
1780년대 [[역사화]]에서 그의 지적인 특징은 [[로코코]]의 경박함에서 고전적인 엄숙함과 엄정함으로 취향의 변화를 이끌어 내었다. 이 변화는 [[앙시앵 레짐]]의 마지막 시기의 도덕적 풍조와 조화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