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의 옥: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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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적의 유악 유용 ==
[[파일:Songsiyeol1680.jpg|thumb|left|180px|송시열]]
 
제2차 예송논쟁에서 승리하고 남인이 정권을 잡았다. 왕실의 전례문제인 복상문제는 [[송시열]]을 죽이자는 의견으로 흘러갔고, 이 과정에서 서인 역시 남인을 죽이려 하였다 남인은 폐지된 도체찰사를 부활시키면서까지 군권의 중요직을 접수하여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 도체찰사는 외방 8도의 모든 군사력을 통제하는 직제로서 영의정이 겸임하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에 영의정이었던 허적이 군권까지 장악한 상태였다. 그 외에도 훈련대장 등 모든 군 요직은 남인이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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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잠의 연시연에 [[서인]]에서는 김석주는 핑계를 대고 불참하고 [[김만기]], [[김익훈]], [[신여철]](申汝哲) 등 소수만 참석하였다. 그런데 그 날 비가 오자 허적은 궁중에서 쓰는 용봉차일(龍鳳遮日)이라 하는 기름을 칠하여 물이 새지 않도록 만든 천막을 왕이나 궁궐의 허락 없이 천막을 가져갔다. [[숙종]]은 비가 오자 용봉차일을 [[허적]]에게 보내려고 명하였으나 허적이 가져간 사실을 확인하고 분노한다.
 
숙종은 노하여 허적의 집을 염탐하게 하였는데 남인은 다 모였으나 서인은 [[김만기]], [[김익훈]], [[신여철]] 등 몇 사람뿐이었다. 이에 노한 숙종은 [[철원]]에 귀양갔던 [[김수항]]을 불러 [[영의정]]으로 임명하고, 조정의 요직을 모두 서인으로 바꾸는 한편, 이조판서 이원정의 관작을 삭탈하여 문 밖으로 내쫓으라고 하였다.
 
== 경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