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의 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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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로서의 신''', 우주의 창조자이자 지배자라는 인물상은 연금술사들이 위대한 작품을 이루고 현자의 돌을 얻은 마스터의 역할을 나타내고자 사용했다. 현자의 돌은 인간본성에 속에 숨겨진 신성의 영역을 뜻하며, 이는 개인의 이기심과 재결합하고 세속적 열정으로부터 이탈할 때 되찾을 수 있으며 다시 활발해진다. 이러한 주제를 바탕으로 연금술에 입문한 사람들은 연금술 작업과 신의 창조 사이에 유사성을 이끌어냈다.
'''그리스도
'''우울(멜랑콜리아)'''는 놀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그려졌는데, 이 이미지는 루두스 푸에로룸(아이들의 놀이)의 은유이다. 이 이미지를 이용하여 그들은 아이들의 놀이와 현자의 돌의 탄생 사이의 유사성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불사조'''는 현자의 돌을 상징한다. 현자의 돌은 능동적, 남성적, 육체적 원리(태양)과 수용적, 여성적, 정신적 원리의 결합에서 탄생된다. 불사조는 증류하는 동안 정화기 위에 올라오는 수증기(또는 정신)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지식을 얻는 열쇠를 지닌 사람들은 매우 어려운 작업인 연금술 마지스터리의 마지막 단계가 '''아이들의 놀이'''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비전이라는 의미에서 볼 때 현자의 돌은 아이들이 놀이-종종 굴렁쇠나 공으로 표현됨, 우주의 전체성과 사건의 영원한 부활의 상징-에 활기를 주기 위해 사용하는 무의식적인 힘을 투입함으로써 비로소 얻어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펠리컨'''이 자신의 피로 새끼를 먹여 살린다고 잘못 생각해 왔다. 그것은 펠리컨이 모이주머니에 모아둔 모이를 다시 게워낼 때의 모습이 마치 자신의 가슴을 쪼고 있는 걱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펠리컨은 그 역시 자신의 물질로 자신의 자식에게 영양분을 주는 현자의 돌을 가장 이상적으로 상징할 수 있는 것이었다.
현자의 돌이 되어가고 있는 물질을 나타내는 '''늙은 왕'''은 연금술 욕조에서 씻기우고 정화된다. <철학자의 장미화원>의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일곱 개의 금속들은 연금술 그림에서는 종종 나뭇가지 위에 달린 익은 과일로 묘사된다. <연금술 박물관>에 나오는 한 그림에는 각 금속들이 서로 다른 나무들에서 자라고 있다. '''나무'''의 이미지는 현자의 돌에 이상적으로 들어맞는 것인데, 그것은 나무처럼 이 돌도 계속해서 새로운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우리의 돌은 정말로 깨끗한 나무가 되어 풍성하게 봉오리를 맺고 후에는 수많은 잔가지와 분지들로 뻗어갈 것이다>'''''기울인 글씨''라고 니콜라스 플라멜도 서술하고 있다.
여행하는 아르고호 사람들은 비교에 입문한 영웅들로 ‘위대한 작품’인 황금 양털을 얻기 위해 항해를 떠났다. 콜키스에서 보호받고 있던 이 '''황금 양털'''은 사실 현자의 돌에 대한 은유이다. 실제로는 인공적으로 황금을 만드는 방법이 담겨 있는 양피지 두루마리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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