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단 (1832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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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申檀, [[1832년]] [[8월 27일]] ~ [[1905년]] [[8월 30일]])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대한제국]]의 관료이며 해공 [[신익희]]의 아버지다. 해공은 그의 6남 1녀 중 여섯째 아들이다. 독립운동가 [[이시영]] 7형제와 인척간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전사한 [[신립]]의 후손이다. 본관은 평산(平山). 당파 소속은 [[소론]]. 아명은 증대(曾大), 자는 경여(敬與), 호는 낙원(樂園)이다. [[경기도]] [[광주시|광주군]] 사마루 출신
 
== 생애 ==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전사한 [[신립]]의 후손으로 그의 아들 [[신경연]]의 후손이다.
 
[[1858년]] 과거에 급제하여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여러 벼슬을 거쳐 [[1873년]] [[조선]] [[대한제국 고종|고종]]이 친정을 앞두고 있을 때 [[승정원]] [[우부승지]]로 부임하였다. 이때 명성황후의 오라비이며 세도가인 [[민승호]]가 당대에는 뭐니뭐니해도 신승지만 한 사람이 없다며 신단을 높이 추켜세우며 칭찬하자 신단은 세도가의 집에 드나드는 문객은 소인배라며 민승호의 은근한 접근을 거절했다고 한다.<ref name=autogenerated1>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99p</ref><ref>신창현 《해공 신익희》(신창현) 549~550p</ref>
그뒤 [[이조 (행정기관)|이조]][[참의]]와 [[참판]], [[사헌부]] [[대사헌]], [[한성부]][[판윤]] 등의 고위직을 지냈으나 세도정치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정치성향과 당색으로는 [[소론]]이라 [[노론]]계 민씨 정권의 핵심에는 진출하지 못하였다. [[동학 농민 운동]]과 [[갑오경장]] 등으로 세상이 바뀔 조짐을 보이자 신단은 [[1895년]] 집안의 하인 대부분을 속량해주고 극소수 하인들만을 데리고 살았다.<ref>오영섭 《한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인물들(1)》(오영섭 저, 한영희 발행, 2007.4, 경인문화사) 99~100p</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