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롤리네 폰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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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Caroline Amelia Elizabeth of Brunswick-Wolfenbüttel
|왕가 =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가]]<br />[[하노버 왕가]]
|아버지 =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카를 빌헬름 페르디난트]]
|어머니 = [[오거스타 오브 웨일즈]]
|배우자 = [[조지 4세]]
 
== 생애 ==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카를 빌헬름 페르디난트|카를 빌헬름 페르디난트와페르디난트]]와 [[오거스타 오브 웨일즈]]의 딸로 태어난 캐롤라인은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촌 [[조지 4세|프린스 오브 웨일스]]과 [[1794년]] 약혼했다. 평소 방탕한 생활로 유명했던 조지는 수십 만 파운드의 빚을 지거나 비밀 결혼식을 올리는 등 많은 문제를 일으켜 아버지 조지 3세의 골칫거리였는데, 조지 3세는 왕자비를 들이는 조건으로 그의 빚을 갚아주는 조건을 걸었다(조지의 애인 [[마리아 피츠허버트]]는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그녀와의 결혼은 무효였다). [[1795년]] 처음으로 대면한 캐롤라인과 조지는 서로에게 실망했지만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796년]] 장녀 [[샬럿 오거스타]]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두 사람은 별거에 들어갔고 샬럿은 왕실이 맡아 기르게 되었다. 캐롤라인이 정부를 두고 사생아까지 낳았다는 소문이 퍼지자 정부 고관들로 이루어진 조사단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그들은 소문의 증거를 찾지 못했지만 조지는 캐롤라인이 샬럿을 만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 궁정 행사에서 배제시켰다. 왕태자비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 채 소외되어 있던 캐롤라인은 [[1813년]]부터 유럽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1816년]]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의 [[레오폴 1세|레오폴]] 공자와 결혼한 샬럿 오거스타가 런던에서 산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딸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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