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8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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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
[[1960년]] 4·19혁명이 성공하자 김종원은 법정에 불려나왔고 그는 "장면박사 저격사건은 전 서울시장 임흥순이 지시했다"고 폭로함으로써 사건의 배후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즉 사건 40일 전 자유당 2인자인 이기붕이 임흥순에게, 임은 내무장관 이익흥에게, 이는 김종원에게, 김은 장역복에게, 장은 박사일 중앙사찰분실장에게, 박은 오충환 시경사찰과장에게, 오는 이덕신에게 범행을 차례로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 사건의 결과 ==
사건을 수사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이홍규]]는 수사능력을 인정받아 유명세를 타게 됐다. 그러나 [[장면]]에 대한 자유당 정권의 견제와 감시는 노골화되었고, [[조봉암]]의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 정부는 사형이라는 극한대응을 하게 된다.
 
== 기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