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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뒤 [[조선 영조|영조]] 때 경신처분으로 복관되었으며 [[경기도]] [[과천]]의 사충서원에 제향되었다. 충문의 시호가 내려졌다.
 
== 사상사상과 신념 ==
=== 서구 문물 수용 ===
[[파일:Lee Yimyung 02.PNG|thumb|right|200px|이이명]]
유교적 화이사상에 입각하여 서구 문물을 받아들였음에도 수용에 적극적이지 않았으나 그 서구 문물의 유용성은 인정했다. 한편 국내의 현실 문제는 수취체제, 특히 군역의 문제는 근본적인 것이라 보고 병역 조달의 개선 방안으로 정포론(丁布論)을 제시했다. 종래의 양인(良人) 남성만을 대상으로 군역을 부과하던 방식을 벗어나, 신분에 관계 없이 양반 자제로부터 상민에 이르기까지 15~60세의 성인 남성이면 누구나 군역을 부담하되, 군역 또는 군역을 대신하여 일정액의 포(布)나 전(錢)을 부담한다는 안이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서구의 문물에 호의적이었으나 들여올 수 없었다. 소론과 남인의 정치공세 보다도 서인 노론 내에서도 아무도 알아주지는 않았기 때문에 실패한다. 그러나 후일 노론 출신 외교관들 중 [[청나라]]의 [[고증학]]과 [[실학]] 사상과 서구의 문물에 관심을 갖고 이를 국내에 소개하여, 고증학과 실학을 도입하게 하는 기틀을 마련한다.
 
=== 양반 군포 징수 ===
이이명은 양반 사대부에게도 군포를 징수해야 된다고 주청하였다. 그에 의하면 양반 사대부 역시 [[조선]]의 백성이므로 양민들과 동등하게 병역을 적용하고, 병역을 징발하거나 군포, 호포를 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남인]]계와 [[서인]]계 모두의 비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 저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