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함거포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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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항공모함의 건조로, 사실 이 시기에 건조된 항공모함들은 대형 순양함이나 전함으로 건조 중이던 선체를 주력함 보유 쿼터로 인해 완성시킬 수 없게 되자 워싱턴 조약에 의해 항공모함으로 설계 변경이 인정된 것들이었다. 일찍부터 항공기 운용에 관심 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주창으로 일본은 특히나 적극적으로 항공모함 건조에 열을 올렸다.
 
이러한 보조함 건조 경쟁의 가속 또한 나중에 문제시 되어 이를 해소 하고자 [[1930년]]에 보조함 제한 규정을 마련한 [[런던]] 해군 군비 제한 조약(1차)이 또다시 조인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두 번에 걸친 해군 군비 제한 조약이 자국에 매우 불리하며 또한 인정된 보유량으로는 태평양 전체로 확대하고자 하는 지배야욕 앞에서 사실상 충돌중인 미국에 대한 억지력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1937년]]의 [[런던 해군 군비 제한 조약]](2차)에의 [[비준]]을 거부함으로써 군축조약 자체가 사실상 의의를 잃어버렸고, 이로써 <해군의 휴일>은 종료되었다. 이후 각국은 조약을 무시하고 제한을 벗어나게 되며, 독일의 [[비스마르크호|비스마르크]]나 일본의 [[야마토호|야마토]], 미국의 [[아이오와호|아이오와]]와 같은 거함거포주의의 초거대 전함이 등장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괄목할 만한 무기의 개발 및 전술의 변화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노급 충격"에 비견될만한 것이 해전에서의 항공기 운용이었다. 서로 육안으로는 확인되지 않는 거리에서 레이더로 확인하고 서로의 함재기를 발진시켜 군함들은 서로간 포격은 한번 교환해 보지도 않고 비행기가 군함들을 공격하게 하여 적국의 군함을 퇴각시키는 방식의 해전이 시작되었다. 특히 일본 해군과 미국 해군이 맞붙은 [[태평양]] [[전역]]은 거의 모든 해전에서 항공전이 해전을 대리하여 승패가 갈리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애시당초 주포 사거리가 항공기의 비거리에는 한참 못 미치는 전함은 주포가 아닌 보조무기인 대공포로 다가오는 적 항공기를 요격하는 정도의 활동 밖에 할 수가 없어서 유지비만 잡아먹는 무용지물이 되어 이러한 거함거포주의는 사실상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