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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워싱턴에서 내무성 교육국국장 이튼(Eaton, J.)을 방문하여 미국의 교육제도에 대하여 소개받았다. 뒤에 교육국사(敎育局史)와 연보를 기증받았다.
그밖에 우편제도·전기시설·농업기술에 관심을 보였는데, 뒤에 우정국 설치, 경복궁의 전기설비, 육영공원(育英公院)·농무목축시험장(農務牧畜試驗場) 등의 실현 계기가 되었다.
[[파일:1883년조선주미보빙사절단01.jpg|보빙사 일행]]
 
이러한 인연으로 뒤에 주한미국공사 푸트를 통하여 육영공원 교사선발을 국장 이튼에게 의뢰, 뉴욕의 [[유니온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의 신학생 [[헐버트]](Hulbert, H. B.)·[[번커]](Bunker, D. A.)·[[길모어]](Gilmore, G. W.)의 3명이 파한되었다.
또한, 볼티모어시에서 가우처(Goucher)여자대학 학장인 가우처를 만나 뉴욕 감리교 선교부에 조선에 대한 선교기금을 희사하게 하여 선교사 파견의 교두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