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불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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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에 들어와서는, 티베트 불교가 받아들인 [[밀교 (불교)|밀교]]의 성적(性的) 요소를 배제한 [[까담빠]](카담파)가 성립되었고, 이들로부터 분리된 [[사키야빠]](사키아파)의 [[파스파]](1239~1280)는 티베트 불교(라마교)의 종교적 수장이 됨과 동시에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여 [[법왕국가]]를 건설하였고 세력을 신장하였다.<ref name="글로벌-티베트의 불교"/> 이 무렵에 티베트 불교(라마교)는 [[티베트인]]과 동일한 [[유목 민족]]인 [[몽고인]] 사회에도 퍼지게 되었다.<ref name="글로벌-티베트의 불교"/>
 
15세기가 되면서 쏭 카파(Tsong­ka­pa, 1357∼1419)에 의한 라마교의 개혁이 이루어져 현세의 이익을 비는 주술(呪術)이 배척되고 계율의 준수가 강조되었다. 이 파는 라사의 동남쪽에 있는 가단사(寺)를 근거로 하여 황모파(黃帽派)라고 불렀으며 종래 라마교의 홍모파(紅帽派), 원시 본교의 흑모파(黑帽派)와 구별되었다. 계율을 중시한 황모파는 대처(帶妻)를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윤회(輪廻)에 의한 전생설(轉生說)로 후계자를 얻으려 하였다. 뒤에 황모파는 라사의 포탈라사(寺)와 시가세의 타시룬포사(寺)로 분열하여 쏭카파(宗喀巴)의 제자 둘이 각각 라마의 칭호를 가지고 이곳을 근거로 하여 법맥(法脈)을 유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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