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실업 축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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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 출범 후 (1983년-2002년)===
 
1982년 실업축구를 1, 2부로 나누고 명칭을 코리언리그로 바꾸는 계획이 발표된다. 1983년 프로축구 슈퍼리그의 개막을 앞두고 1982년 시즌의 성적에 따라 1983년부터는 리그를 두개로 나누어 승강제를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1983년 코리언리그는 한국 축구 최초로 1부 7개팀, 2부 8개팀으로 구분하여 리그를 운영하며<ref>{{뉴스 인용|저자=|제목=프로·아마 한배타고|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041200209208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3-04-12&officeId=00020&pageNo=8&printNo=18929&publishType=00020|날짜=1983-04-12|출판사=동아일보}}</ref>, 1부의 경우 프로축구처럼 연고지 제도를 도입한다(2부는 서울에서만 경기)<ref>{{뉴스 인용|저자=|제목=실업축구도 운영은 프로처럼 - 본거지제도 채택|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121500209208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12-15&officeId=00020&pageNo=8&printNo=18831&publishType=00020|날짜=1982-12-15|출판사=동아일보}}</ref>. 즉 이 해에는 슈퍼리그(1부), 코리언리그 1부(2부), 코리언리그 2부(3부)의 세 개 디비전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1982년 우승팀 하지만 1984년 대한축구협회는 다시 이를 통합리그로 환원시키며<ref>{{뉴스 인용|저자=|제목=실업축구 코리안리그 1,2부제 1년만에 다시 통합|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3111600329208029&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3-11-16&officeId=00032&pageNo=8&printNo=11734&publishType=00020|날짜=1983-11-16|출판사=경향신문}}</ref>, 체육부의 외래어 순화 정책으로 대회 명칭 역시 실업축구연맹전으로 돌아온다<ref>{{뉴스 인용|저자=|제목="外來語(외래어) 대회명칭 우리 말로" 체육부,슈퍼리그·코리언시리즈등 바꾸도록 지시|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11300209209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1-13&officeId=00020&pageNo=9&printNo=19162&publishType=00020|날짜=1984-01-13|출판사=동아일보}}</ref>.
 
이후 1980, 90년대 실업축구는 2부 리그로서 역할을 하나, 프로축구와 승강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편 1991년에는 제1회 [[전국실업축구선수권대회]]가 열리며<ref>{{뉴스 인용|저자=|제목=商銀(상은)·한일銀(은) 8강에 실업축구 선수권|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71800329111013&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1-07-18&officeId=00032&pageNo=11&printNo=14114&publishType=00010|날짜=1991-07-18|출판사=경향신문}}</ref>, 이는 리그컵대회로서 현재의 [[내셔널축구선수권대회]]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