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채플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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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성향 ==
[[파일File:Chaplin and GandhiCharlieChaplinAndGandhi.jpg|thumb|left250px|1931년채플린과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한 채플린]]
채플린이 사회에 관련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16년]] 제작하기로 한 《삶》이란 영화였다. 그러나 채플린은 이 영화를 포기하게 되었다. 이후 이 영화를 찍으면서 나온 장면들은 《[[경찰 (1916년 영화)|경찰]]》에 쓰이게 되었다.
채플린은 [[좌파]] 정치 성향 곧 [[진보]]적인 정치신념을 지켰다. 비록 초기 작품이 슬랩스틱 코미디이긴 하였으나 그때 이미 그의 작품에는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1930년대에 들어서 그의 영화를 직접 만들게 된 채플린은 보다 자신의 정치성향이 드러나는 영화를 제작하였다. [[자본주의]]와 [[나치즘]]을 비평한 [[1936년]]의 《모던 타임즈》와 [[1940년]]의 《위대한 독재자》는 그의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확고하게 보여준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채플린은 [[미국]]을 지지하였다. 그는 [[퍼스트네셔널 픽처스]]에서 《[[동맹 (영화)|동맹]]》을 제작하게 된다. 이 영화는 [[독일]]로 부터 미국을 보호해야 한다는 정치 영화였다. 그러나 같은 해에 개봉한 《[[어깨총]]》에서 채플린은 전쟁을 비판하였다. 이후 단순한 희극적 영화만을 제작하던 채플린은 《[[키드 (영화)|키드]]》에서 가난한 시민들의 삶을 그려냈으며 《[[유한 계급]]》에서는 부자들을 비판하였으며 《[[순례자 (영화)|순례자]]》에서는 맹목적인 종교인들을 비판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작된 《라임 라이트》와 같은 채플린의 영화는 보다 부드러워졌으나 여전히 사회의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보여 준다. 그의 이러한 신념은 채플린의 예술적인 원천이 되었지만, [[매카시즘]]의 미친 바람이 불던 미국사회에서 [[공산주의자]]로 몰려 탄압받았다.
 
[[1923년]], [[유나이티드 아티스츠]]로 가자 채플린은 《[[파리의 여인]]》에서 부르주아를 비판하면서 채플린 특유의 사회적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1925년]] 제작된 《[[황금광시대]]》에서는 비극적인 결말을 내려고 했으나 상업계와 타협을 하여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ref>[http://movie.naver.com/movie/bi/mi/detail.nhn?code=11035#movietalk|네이버 영화 <황금광시대>]</ref> 채플린은 여전히 사회 비판 영화들을 제작하였다.
 
[[1936년]]에 제작된 《[[모던 타임즈]]》에서 채플린은 그의 영화 중에서 가장 비판적인 영화를 제작하였다. 이 영화는 자본가, 컨베이어 벨트, 경찰, 파업, 마약, 정부를 비판하였다. 특히 영화 중간에 채플린이 트럭에서 떨어져 나온 빨간 깃발을 주려다가 [[공산주의자]]로 몰려 잡혀간다는 것은 큰 충격을 주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이 장면을 없앤 후 상영하게 하였다. 한편 [[월트 디즈니]]는 보수주의자였지만 모던 타임즈의 공장 장면에 깊은 감명을 받아 [[1942년]]에 제작된 [[도날드 덕]]이 나온 단편 애니메이션 《[[총통의 얼굴]]》에서 공장 장면을 패러디하였다.<ref>[http://goliath_777.blog.me/110088764671|자유로운 골리앗의 즐거운 상상 제작소, 월트 디즈니의 선전영화 "총통의 낯짝 (Der Fuehrer's Face)", 1942년 작]</ref>
 
[[File:Double Cross (Great Dictator).svg|thumb|150px|left|위대한 독재자에서의 쌍십자가]]
이후 [[1940년]]에는 《[[위대한 독재자]]》를 제작하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채플린은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을 비판하였다. 채플린은 이 영화에서 [[나치]]를 쌍십자당으로 히틀러를 힝켈로 패러디하여 비판하였다.
 
[[1947년]] 제작된 《[[무슈 베르두]]》에서는 [[자본주의]]를 비판하였다. 채플린은 그 전부터 [[FBI]]에서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이 영화의 개봉으로 인하여 채플린은 [[매카시즘]]의 피해자가 되어 공산주의자란 소리를 들으며 미국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채플린이 살아온 삶은 [[좌익]] 성향의 진보주의자였으며 평화주의자이자 자본주의 비판자였다. 채플린은 끝내 자신의 정치 성향을 바꾸지 않았다. 따라서 채플린은 [[1950년대]]에 여러모로 힘들게 살았다.
 
== 채플린과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