돔슈테트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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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Laudon.jpg|thumb|right|에른스트 기데온 폰 라우돈. 군트라모비스 전투와 돔마소프에서 그는 첫 대승을 거두었다. 이 공로로 그는 훗날 육군 원수가 되었다.]]
 
라우돈은 모라비아 북부의 작은 마을인 군트라모비스에서 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스코비츠는 2일 내에 도착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숲속에서 길을 헤매는 바람에 늦어지게 되었다. 이는 라우돈에게 꽤나 큰 문제였는데, 왜냐하면 라우돈이 지휘하는 부대는 4개의 보병대대와 1개의 [[용기병]] [[연대]], 1개의 [[후사르]](hussars 경기병) 연대, 그리고 포병부대와 국경 수비대를 다 합쳐도 겨우 6,0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로모츠가 가까운데다가 더 이상 기다릴 시간도 없었기 때문에 공격을 결심했다. 라우돈은 이때 [[한스 요아임 폰 자이튼치이텐]](Hans Joachim von Zieten) 중장이 지휘하는 20,000명으로 구성된 프로이센의 대군이 모젤을 돕기 위해 수송부대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송부대는 7월 28일 아침에 도착하였다. 오스트리아군은 선두에 선 마차에 사격을 개시하였다. 프로이센 보병대대가 적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앞으로 진군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오스트리아 포병대의 공격으로 퇴각하였다. 프로이센군은 자신들이 있는 도로 쪽에서 포병대를 구성하여 사격을 시작했다. 프로이센군은 경사진 곳에 위치한 오스트리아군에게 공격을 하려 수차례 시도하였으나 그때마다 격퇴당하였다. 전투는 5시간 동안 계속되었으나 결국 프로이센군이 전장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라우돈은 휘하 병사들에게 모라브스키 베로운(Moravský Beroun)으로 퇴각하라고 명을 내렸다. 이 퇴각작전은 쉽게 진행되었는데, 모젤에게는 오스트리아군을 추격할 만한 충분한 기병 전력이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