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리에트 레카미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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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rançois Pascal Simon Gérard 003.jpg|thumb|레카미에 부인, [[프랑수아 제라르]] 그림]]
'''줄리에트 레카미에'''(Juliette Récamier, [[1777년]] [[12월 4일]] ~ [[1849년]] [[5월 11일]])는 [[19세기]] 초반의 프랑스에서 당시의 정계, 예술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여성이다. [[리용]]에서 법률가의 딸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잔 프랑수아즈 줄리 아델라이드 베르나르 레카미에''(Jeanne-Françoise Julie Adélaïde Bernard Récamier)이다. [[자크루이 다비드]]가 그린 초상화의 주인공 '''레카미에 부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녀보다 30세 가까이 연상이었던 남편 자크 레카미에는 부유한 은행가였고, 레카미에 부인 본인도 뛰어난 미모에 높은 교양을 갖추고 있었다. 레카미에 부부는 [[루이 16세]] 시절 재무장관 [[자크 네케르]]의 저택이었던 쇼세 당탱에 살았다. 레카미에 부인의 살롱에는 [[프로스페르 메리메]], [[스탈 부인]], [[뱅자맹 콩스탕]], [[장 빅토르 마리 모로]], [[테레자테레즈 카바뤼스탈리앵]], 훗날의 [[칼 14세 요한]]이 되는 장 밥티스트 쥘 베르나도트 등이 드나들었으며, [[샤토브리앙]]은 수 년에 걸친 염문 상대이기도 했다.<ref>시아오링링, 《거침없이 빠져드는 역사 이야기 (명화 편)》, 시그마북스, p.155</ref> 레카미에 부인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던 인물 중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도 있었으나 두 사람의 관계는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와 함께 악화되었다. [[1805년]] 남편의 레카미에 은행이 도산했고<ref>앨리스테어 혼, 《나폴레옹의 시대》, 을유문화사, 2006년, p.77</ref> [[1811년]] 레카미에 부인은 마침내 파리에서 추방되었다. 이후 수년간 유럽을 떠돌던 레카미에 부인은 [[1819년]] 파리로 돌아와 [[1849년]] 71세의 나이에 [[콜레라]]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