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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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영국군도 지뢰 때문에 예상 밖의 병력 손실이 발생했고 모든 계획이 틀어지고 있었다. 지뢰와 같이 묻어둔 110㎏ 짜리 폭탄은 1개 소대 장병 30명을 순식간에 하늘로 날려버렸다. 제42 스코틀랜드 연대의 1개 대대에서는 새벽이 오기 전까지 7명의 향도 장교가 사망 또는 중상을 입었다.
 
그러나 영국군에 이 전투 최대의 위기는 [[10월24일10월 24일]] ~ [[10월 25일]] 밤에 벌어졌다. 엘 알라메인 전 지역이 거대한 살육장으로 변한 아비규환 속에서 공격하는 영국군이나 방어하는 독일군 어느 쪽도 승패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다. 25일까지 영국군 보병은 6000명 이상이 전사하거나 중상을 입었고 전차는 130대가 파괴됐다.
 
몽고메리의 참모장과 제10·제30군단장은 더 이상의 공격은 무리라고 보고 몽고메리에게 작전을 중지하고 철수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때 몽고메리는 이렇게 응대했다. “아직도 사용 가능한 [[전차]]가 900대나 있다.
그것들은 소모품이다.” 25일 롬멜은 완쾌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격전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이미 전세는 기울었고 탄약·전차 연료가 바닥났다.
 
#[[10월 26일]] 영국의 제9사단(오스트레일리아군)이 북쪽에서 8㎞ 의 지뢰밭을 돌파했다. 롬멜은 오스트레일리아군의 돌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예비인 제90경기갑사단을 투입하고 남방 50㎞ 지역에 있던 제21기갑사단에 북쪽으로 이동할 것을 명령했다. 그는 북쪽에 투입한 사단들이 더 이상 급한 곳이 있다 하더라도 되돌아갈 연료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롬멜이 정예부대를 북쪽에 투입한 사실을 간파한 몽고메리는 북쪽의 주공부대를 현재 위치에서 남쪽으로 8㎞ 지점인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의 경계선 쪽으로 이동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