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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발은 고운이 암살되고 일어난 혼란을 평정하고 스스로 뒤를 이어 천왕에 즉위하였다. 풍발은 정치에 힘써 국내를 안정시키는 한편 고구려와는 화친하고 화북의 강자로 등장한 [[북위 (북조)|북위]](北魏)와 대립하였다. [[430년]]에 풍발의 뒤를 이어 동생 [[풍홍]](馮弘)이 즉위하였다.
당시의 북연은 북위의 압박을 받아 나라가 위태로웠다. 이에 풍홍은 [[435년]],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면 고구려로 망명하여 재기를 도모할 것을 청하였다. [[436년]] 북위가 침공하여 백랑성(白狼城)이 함락되자 풍홍은 고구려로
[[랴오닝 성]] 북요시 서관영자에서 북연의 재상 풍소불(馮素弗)의 분묘(墳墓)가 발굴되었으나 명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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