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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정조 때인 [[1797년]]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영국]] 군함 프로비던스 호가 [[부산]] 용당포에 표착하여 동래 부사와 교섭하였다. 의술에 상당한 조예가 있던 정조는 재위 24년인 [[1800년]] [[음력 6월 14일]] 직접 처방을 내리기도 했다. 소요산에 황금, 황련을 추가해 사용하고, 음력 6월 16일에는 사순청량음, 금련차, 웅담고를 투약했으며 다시 가감소요산 세 첩과 금련차를 쓴다.<ref name="주간동아"> [http://www.donga.com/docs/magazine/weekly/2008/06/02/200806020500023/200806020500023_1.html “정조 사망은 인삼 오용 인한 의료사고”], 《주간동아》, 2008년 6월 11일 작성. </ref> 음력 6월 20일에는 유분탁리산(乳粉托裏散)과 삼인전라고(三仁田螺膏)를 사용한다. 정조 스스로 가미소요산 처방을 내리기도 했다.<ref name="주간동아"/>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개혁에 착수하였으나, [[1800년]] 음력 6월 49살의 나이에 병이 악화되어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그가 추진해 온 개혁은정책과 [[남인]], [[소론]] 등의 등용 등은 대부분 무산되고 말았다. 그 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을 거쳐 [[조선]]에는 외척 가문이 주도하는 [[세도 정치]]가 전개된다. 한편, 정조의 죽음에는 독살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사료는 아직 없다.
 
=== 사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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