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수 (1728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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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金鍾秀, [[1728년]] ~ [[1799년]] [[1월 7일]])는 [[조선]]시대 후기의 학자, 문신, 정치인이며 사상가이다. [[김구 (1649년)|김구]]의 증손이며 김치만의 아들이고 [[김재로]]의 종손이자 [[김치인]]의 5촌 조카이며 [[김종후]]의 동생이다. [[사도세자]]의 정적이었던 [[김상로]], [[우의정]]을 지낸 [[김약로]]는 그의 재종조부였다.
세손 시절의 [[조선 정조|정조]]의 스승으로 당론에 반하여 [[조선 정조|세손]]을 옹호하였으며, 그뒤 [[조선 정조|정조]] 즉위 후 [[이조]][[판서]]와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 [[좌의정]]에 이르렀다. [[조선 정조|정조]]에게 도의정치를 역설하며 임금이면서 아버지이면서 동시에 스승이 될 것을 건의하였다.
당색은 [[노론]]이었으며 [[노론]] [[벽파]]의 강경파였던 선조들과는 노선을 달리하여 당숙 [[김치인]]과 함께 [[노론]]온건파에 가담하였다. [[세손]] 시절의 [[조선 정조|정조]]의 사부이기도 했다. 대의명분에 입각한 군사부일체론을 주창하였다. 뒤에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의 부주석인 [[김규식]]의 종고조부이기도 하다. 본관은 청풍(淸風)이며 [[자 (이름)|자]](字)는 정부(定夫), 호는 몽오(夢梧)·진솔(眞率)이고 시호(諡號)는 문충(文忠)이다. [[한성부]]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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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 생애 초반 ===
김종수는 [[1728년]] 우의정을 지낸 [[김구]](金構)의
[[1750년]]에 [[생원시]](生員試)와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생원과 진사 되어 곧 관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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