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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보프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요절하여 이모 손에서 자랐다. 할아버지는 귀족이었으나, 아버지는 혁명운동에 종사하였고, [[러시아 내전]] 시기에 참전했다가 실종되었다. 아마도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릴 적부터 수학에 재능을 보였으나, [[10월 혁명]] 이후 러시아가 내전으로 어수선한 시기였기 때문에 교육의 기회를 놓칠뻔 하였으나,하였으다. 양부모를 잃은 그를 입양한 헌신적인 이모는 콜모고로프를 모스크바에 데려와서 고등학교 (김나지움) 졸업시켰다. 이후 [[모스크바 국립대학에서대학]]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여기서 그는 수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하였으며, 그가 대학에서 처음 낸 논문은 수학이 아니라 역사학에 관한 것이었다. 수학적 연구도 병행하여 1922년 [[푸리에 해석]]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 논문은 "거의 모든곳모든곳에서 (almost everywhere.: 측도이론에서는 주로 a.e.라는 약어로 표기한다. ) 존재하는 푸리에 급수" 의 예를 보인 것으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은 논문이다. 이때 그의 나이는 고작 19세였다.
러시아는 이전부터 확률론에 강한 전통이 있어서 많은 대가들을 배출하였으며, 대표적으로 [[마르코프]]나 [[체비셰프]] 등이 있었다. 콜모고로프가 연구하던 푸리에 급수는 해석학에 속한 것이었으나, 이후 콜모고로프는 확률론에 관심을 보였고, 학부를 마치고 바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이 방면의 연구를 계속 1929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