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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이재명 의거}}
 
고종이 퇴위하고 순종이 즉위하자 그는이완용은 사회적으로 황제를 퇴위시킨 망국노, 역적이라는 질타를 당했고 반이완용 시위, 이완용 화형식이 곳곳에서 거행되었다. 그러나 이완용은 [[1907년]] [[12월]] 보국숭록대부로 승진했다. 이완용은 1909년 벨기에 황제 추도식에 참가하러 [[명동성당]]에 갔을 때 기다리던 [[이재명 (1890년)|이재명]]<ref>이재명은 당시 대한제국의 현역 군인이었다.</ref>의 칼에 찔렸다. 그러나 우연히 인력거꾼 박원문이 그의 앞을 막아서는 바람에 목숨을 건진다. 박원문은 대신 부상을 당해 절명하고 만다. 이재명 열사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그 자리에서 재차 이완용을 공격했지만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 하고 체포된다. 이재명 열사는 합병 후 박원문을 살해한 죄로 1910년 9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반면 이완용은 어깨, 허리, 복부 등 세 곳을 칼로 찔리는 큰 부상을 당하였고, 왼쪽 폐에 찔려 관통당하는 치명상을 당한다. 이때 상처는 만년에 [[해수병]]으로 고생하다 끝내 천식과 폐렴으로 사망하는 원인이 된다. 이완용은 암살될 뻔한 위기를 맞았으나 약 2개월간의 입원 치료 끝에 회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