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토론:중국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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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ridi (토론 |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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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토론 하는거 아니거든요? 토론의 주제는 삼황오제를 중국사틀에서 빼냐 안빼냐에요. 토론의 주제를 벗어나지 마세요. 그리고 님이 잘못알아듣게 말하시는거는 못느끼시나요?
 
사기가 역사서로서의 권위를 갖는 이유는 대충만 열거해도 다음과 같습니다.
#사기가 오래전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증빙하는 문서 기록 등의 자료는 일일히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사기의 기록된 내용과 당대의 기록된 다른 기록서적 또는 후대의 기록 자료나 이에 대한 논평 등으로 통해 보았을 때 기록된 내용의 신빙성에 대해 의심을 기하기 힘들정도로 내용이나 기록에 있어서의 변질 변용 가능성이 적다.
이 두 가지만 비교하더라도 규원사화는 사서로서의 권위에 대해 크게 떨어집니다. (기재된 내용을 믿을 수 없단 얘깁니다)
#규원사화가 오래전에 기록되었다는 것을 증빙하는 문서 기록 등의 자료는 희박하다. 규원사화의 존재 여부는 조선 중기 이후에서나 증빙된다.
#규원사화의 기록된 내용은 서술된 문체 기술된 내용등을 종합해 볼 때 후대에 변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Breathejustice님께서 주장하시는 건 일본 서기가 사기랑 같은 내용을 담고 있으니 일본 신화가 실존했다고 주장하는 거랑 마찬가지의 억지 주장입니다. 역사서로서 기재된 내용을 신빙할 수 있는 권위가 충분한 사기의 기록과 그러한 권위가 없이 내용의 변조나 진위 여부조차 의심되는 역사서의 내용을 동급으로 두는 것 자체가 이미 모순이죠.
 
또한 규원사화에 사기에도 등장하는 내용이 있는 데 규원사화의 내용을 못 믿는 건 모순이다라고 주장하시는 데, "규원사화"와 "사기"가 비슷한 시기에 작성되었거나 혹 규원사화가 먼저 작성되었다는 가정하에서나 가능한 모순입니다. 규원사화가 후에 작성되었다면 사기의 내용을 똑같은 내용을 담지 못할 이유가 하등 없습니다. (베끼거나 참고하면 되니까요) 규원사화와 사기에 동일한 사실이 모두 등장한다고 해서 규원사화를 사기와 동급 수준의 신빙성을 가진 역사서로 취급하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일본서기 또한 사기와 동일한 사실이 등장하긴 합니다. 그렇다고 일본서기가 사기와 동급으로 신뢰할 수 있는 역사서인가요?)
 
따라서 환국을 신화로 여기지 않고 삼황오제를 신화로 인정하는 것은 중국 것을 인정하고 한국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한 내용을 신뢰하고 의심가는 부정확한 내용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사대주의 운운하신다면 정말로 인신공격으로 간주토록 하겠습니다. - <span style="font-size:90%;color:Gray">'''χε''' [[사용자:Airridi|<span style="color: DimGray">'''아이리디'''</span>]]</span> <span style="font-size:80%; color:DarkGray">([[사용자토론:Airridi|<span style="color:DarkGray">토론</span>]])</span> 2007년 1월 31일 (목) 16:05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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