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Dootak (토론 | 기여)
정동철 (토론 | 기여)
14번째 줄:
남인의 정치 이념과 강령은 기본적으로 [[유교]], [[성리학]]이었다. 그러나 [[허목]] 등은 도교와 노장사상에도 관심이 있었고, [[유형원]], [[이익]] 등은 [[청나라]]의 [[고증학]]과 실리 사상을 추구하여 [[실학 사상]]을 잉태하기도 했다. 이는 [[성리학]]과는 정면 배치되는 사상이라 남인 당내에서도 이론의 여지가 있었다.
 
18세기에[[18세기]]에 오면 [[이승훈]]이 [[천주교]]를 받아들인 이래 [[권철신]], [[이가환]]이 [[천주교]] 사상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천주교]] 사상을 받아들이기를좋지 않게 거부하는생각하는 세력이 등장하였으며 이를 천주교를 받아들인 신서파와 구별하여 공서파라 부른다. [[윤지충]], [[권상연]] 등의 위패 소각 사건을 계기로 공서파가 두드러졌다.
 
[[인조 반정]] 이후에도 남인은 거의 오랜 기간 야당화를 겪었으므로 남인은 [[성리학]]을 당의 주요 강령으로 삼았으나, 남인내 일부는 [[실학]]과 [[천주교]] 등 다른 사상에서 사상적 기반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