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만 (언론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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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8월]]에는 동아일보 사장에 취임하였다. 1974년에는 동아일보사 기자와 동아방송 프로듀서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자유언론실천운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회사측과의 갈등이 심화 대립되는 상태가 벌어졌는데, 이 해 말부터 박정희(朴正熙) 정권은 ≪동아일보≫와 모든 자매지에 대한 광고 탄압을 자행하여 안팎으로 커다란 시련을 겪었다. 그 와중에서 기자와 방송 프로듀서들에 대한 집단해고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으나 김상만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 공로로 국제신문발행인협회(FIEJ)의 1975년도 ‘자유의 금펜상(Golden Pen of Freedom)’을 받았다. 이어서 1977년 [[동아일보]]사 대표이사 회장, [[1981년]] [[동아일보]]사 명예회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정권의 탄압에서 해고된 직원들의 처우를 외면하여 후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1978~1986년 국제언론인협회(IPI) 본부이사를 지냈다. [[1982년]] 재단법인 [[고려중앙재단]] 이사장에 선임되고 1983년 한영수교 100주년기념사업위원장, 1984년 신문인협회 고문, 1986년 IPI 종신명예회원에 선임되었다. [[1988년]] [[노태우 정부]]가 출범하자 정부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자제하고 점차 온건적 성향, 친정부 성향으로 변신하였다변화해갔다.
 
[[1989년]] [[동아일보]] 해직 직원들을 중심으로 [[한겨레 신문]]이 창간되면서 동아일보는 보수적 성향으로 변신했고 그는 이를 묵인했다. [[1992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김영삼]]을 지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