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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남궁괄'''(南宮适:남궁시)은 노나라 사람으로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성은 '''남궁'''(南宮), 휘는 '''괄'''(适)이다. 또 다른 명칭은이름은 '''남궁경숙'''(南宮敬叔)이다인데 오늘날에 통용되는 실제 이름이다. 남궁괄(南宮适)은 성은 남궁씨인데, 맹손씨 가문 사람, 즉 [[노나라]] 맹손씨 가문 '''맹희자'''(孟僖子) 아들로 '''맹의자'''(孟懿子)의 형이다. 공자의 제자 중에 남용(南容)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남궁괄과 동일인이라는 설이 있는데 명확하지 않다. 남용의 본명은 남궁도(南容韜)로 자가 자용(子容)이었으므로 남용(南容)으로 불렸다. 남궁경숙도 공자의 제자였다.
 
좌전(左傳), 소공(昭公) 7년에 의하면 맹희자(孟僖子)가 죽을 때 두 아들 '''맹의자'''(孟懿子)와 '''남궁경숙'''에게 공자에게 예의를 배우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맹의자(孟懿子)는 이름이 하기(何忌)인데, 일설에는 '''맹의자'''(孟懿子)가 남궁괄이고, 남궁경숙(南宮敬叔)은 그의 형이라고도 한다.
 
==비고==
공자의 제자 중에 남용(南容)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남궁괄과 동일인이라는 설이 있는데 명확하지 않다. 남용의 본명은 남궁도(南容韜)로 자가 자용(子容)이었으므로 남용(南容)으로 불렸다.
남궁괄(南宮括:난궁과)씨는 [[주문왕]]의 친구로 희성이며 [[주나라]] 개국 공신이다. 노나라 남궁괄과 한국 발음은 같지만 중국 병음은 다르며, 본명 '''남궁경숙'''(南宮敬叔)과는 전혀 다르다. 그의 후손으로 '''[[남궁장만]]'''(南宮長萬)이라는 인물도 있었는데 송나라에서 장수을 지내다 반란을 일으켰다가 살해됐고, 그 아들은 [[위나라]]로 달아났다.
 
맹의자(孟懿子)는 이름이 하기(何忌)인데, 일설에는 '''맹의자'''(孟懿子)가 남궁괄이고, 남궁경숙(南宮敬叔)은 그의 형이라고도 한다.
 
남궁씨와 유사한 남곽(南郭)씨의 경우 주문왕 동생이 곽국에 봉해진 후 남곽에 살면서 남곽씨가 되었는데, 노나라 남궁씨도 노나라 지역에 있는 남궁이라는 시 이름에서 기원했다고 믿어 진다. [[송나라]]에 '''[[남궁장만]]'''(南宮長萬)이라는 인물도 있었는데 선조가 주문왕의 친구로 희성이라고 전하며 내란으로 [[위나라]]로 달아났는데, 남궁괄(남궁경숙)과 관련성은 확실치 않다.
 
==함께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