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히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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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나]] 2년([[1616년]]) 쿠와나 번(桑名藩)의 번주이자 [[혼다 다다카쓰]](本多忠勝)의 손자인 [[혼다 다다토키]](本多忠刻)와 재혼하였고 동시에 화장비 명목으로 10만 석의 영지를 받았다. 이 때 쓰와노 번(津和野藩)의 번주인 사카자키 나오모리(坂崎直盛)가 쿠와나 번으로 향하는 센히메의 혼례 행렬을 덮쳐 센히메의 가마를 탈취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발각당하여 사카자키 나오모리는 자살하고 사카자키 가문은 개역(改易) 처분을 당하는 센히메 사건(千姫事件)이 발생하였다.
 
[[겐나]] 3년([[1617년]]) 혼다 가문이 하리마(播磨) 히메지(姫路)로 영지가 변경되면서 남편 혼다 다다토키와 함께 [[8월 28일]] [[히메지 성]](姫路城)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듬해인 [[겐나]] 4년([[1618년]])에는 장녀 가쓰히메(勝姫), [[겐나]] 5년([[1619년]]) 장남 고치요(幸千代)가 태어나는 등 혼다 다다토키와 센히메는 금슬도 좋았지만, [[겐나]] 7년([[1621년]]) 아들 고치요가 세 살의 나이로 사망하고 [[간에이]] 3년([[1626년]]) 남편 혼다 다다토키와 어머니 에요가 연이어 사망하자 딸 가쓰히메와 함께 혼다 가문을 나와 친정 [[에도 성]](江戸城)으로 되돌아왔다. 불교에 입문하여 덴주인이라는 법명을 받은 센히메는 가쓰히메와 함께 [[에도]]의 다케바시 저택에서 거처하였다. 가쓰히메는 [[간에이]] 5년([[1628년]]) 외조부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양녀가 되어 [[이케다 미쓰마사]](池田光政)와 혼인하였다.
 
== 주석, 참고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