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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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HideyoriYodoJijinM0678.jpg|150px|thumb|left|오사카 성내 히데요리와 요도도노 모자의 자결 장소]]
도쿠가와 군이 오사카 성에 입성하면서 히데요리와 요도도노는 본성을 버리고 야마자토마루(山里丸)로 피신하였으나 곧이어 도쿠가와군에 포위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이때 오노 하루나가가 센히메의 신병을 넘기는 조건으로 히데요리 모자의 목숨을 보전해 줄 것을 도쿠가와 측에 탄원하였다고 하나 진위는 불분명하다. 히데요리는 야마자토마루에서 요도도노와 함께 자결하였다.
 
묘소는 [[교토]] 히가시야마 구의 요겐인(養源院)이다. 그 밖에 [[오사카]] 도요쿠니 신사(豊国神社)에서도 부친 히데요시, 숙부인 [[도요토미 히데나가|히데나가]](秀長)와 함께 히데요리 또한 신으로 모시고 있다.
 
[[1980년]] 오사카 성의 산노마루(三ノ丸) 철거지에서 히데요리로 추측되는 유골이 교토 세이료지(清凉寺)에 안치되었으나 실제 히데요리인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측실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히데요리의 아들 [[도요토미 구니마쓰|구니마쓰]]는 몸을 숨겼으나 도쿠가와군에 발각되어 살해되었다. 딸 [[나아히메]] 역시 처형당할 처지에 놓였으나 [[센히메]]의 양녀가 되어 불문에 귀의하는 조건으로 목숨을 건진 뒤 [[1645년]] 후사 없이 병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