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 (귀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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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苩加)는 6세기 초기 [[마한]]의 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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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후반, 백제는 동성왕 시대에 마한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하여 [[마한]]과 교섭하고 있었다. 백제는 마한 호족에게 벼슬을 부여하고 지배하려고 하였다. 동성왕은 힘이 세고 활쏘기를 잘했지만, 방탕하고 사치를 좋아해 민심이 흉하게 만들었으며, 동성왕의 왕권 강화책에 마한 호족들은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501년에 백가는 동성왕이 사냥을 나갔을 때 백가가 군사를 동원하여 동성왕은 화살을 맞혀 살해하였다. 무령왕은 군대을군대를 동원하여 백가의 목이 잘라 시체와 함께 백마강(白馬江)에 던져졌다. 백가(苩加)의 반란은 [[마한]]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한 백제와 마한과의 세력 다툼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501년 이후, 마한 세력은 현재의 전라남도, 창원 등으로 내려 갔다. 전라남도 나주 지역의 마한 세력 무덤에서 금동 신발, 금관 왕관, 금관모, 신라 미추왕 무덤에서 출토된 서수형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전남 마한의 유물은 신라 미추왕 주변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사하였는데, 특히 금관의 경우 경주에서 출토된 금관과 형태가 매우 유사하였다. 금관은 창령 가야 지역에서도 일부 출토되었다. 나주 지역에서 출토된 유골을 분석한 결과 신라, 가야인의 유골도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