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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는 가운데 경북 고령 지역을 임나가야(任那伽倻)로 부르기도 한다. 임나가야(任那伽倻)는 6가야의 맹주국(盟主國)이었다고 하여, 대가야라고도 한다. 본래 미마나(彌摩那)인데,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미마나 일본부(任那日本府) 등으로 기록된 것을 근거로 일본의 가야지배설을 주장하여 논란이 되어 왔으나 한국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 학자들은 의자왕이 대마도에서 태어난 기록, 6세기 임나가 백제을 지원하여 고구려을 공격한 기록을 근거로 가야 지역이 5~6세기 백제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고 파악한다.
 
한국 일부 학자는 임나(任那)을 지금의 [[대마도]]라고 한정하기도 한다. 대마도 서북 경계의 의부가라(意富加羅)의 개호, 즉 고친 이름으로 후대에는 대마도 자체의 명칭으로 사용되었고, 광개토대왕 군대가 고대 일본을 정복하여 임나(대마도), 일기도(一岐島), 규슈(九州) 전체를 10개국 연방체(임나연방)으로 만들어 다스렸으며, 기내(畿內)지방에 위치한 야마토(大和) 왜(倭:야마토-일본발음)를 속국으로 삼았으므로, 임나는 한반도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광개토왕릉비]]의 서술에는 [[고구려]] 군대의 가야 정벌 이전에 왜구들이 [[한반도]] 내륙에 있어 고구려 군대을 보내 정벌했다는 내용이 있고, 그 결과로 가야인의 대규모 일본 이주가 이루어져다는 역사적 사실과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왜 지역을 대마도로 한정하여도 한반도와 관련성이 끈어지지 않는 것이, 고려 이전 대마도는 한국 영토여서 백제 [[무령왕]]이 태어난 곳이고, 신라-가야의 영토이므로 대규모 인구 이동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고구려 군대가 신라, 가야 지방을 정벌하기 이전에는 임나, 즉 일본 [[왜]] 소국 지역이 한반도 내륙이었던 것은 대부분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심지어 왜는 [[백잔]], [[이잔]]을 대동하여 [[고구려]]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광개토왕릉비]]에 남아 있다. 일본식 무덤이라는 [[전방후원분]]의 무덤 양식이 전남 이외에도 경기, 경주, 경남, 창원, 함양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마한 지역에서도 신라, 가야 유물, 유골이 출토 되었는데, 특정 유골 DNA가 현대 일본인과 같다는 연구 결과도 남아 있다. 본래 왜는 전국 시대 연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가 천천히 남하, 강원도을 거쳐 신라, 가야, 마한 지역에 산개했다고도 한다.
 
==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