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선농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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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정보
| 소재_국가 = [[대한민국서울특별시]]
| 유형 =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유형문화재]]
| 그림 =
| 그림설명 =
| 이름 = {{0}}선농단 (先農壇)
| 지정_번호 = 15
| 지정연월일 = [[1972년]] [[8월 30일]]
| 해지연월일 = [[2001년]] [[12월 29일]]
|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동
| 소유자 =
| 좌표 =
| 제작_시기 =
| 비고 = [[대한민국의 사적|사적]] 436호로 승격지정
}}
 
'''선농단'''(先農壇)은 [[조선 태조]] 때 [[신농]](神農)씨와 [[후직]](后稷)씨를 제사 지내던 곳으로, 임금이 친히 이곳에서 [[춘분]]과 추분에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제(先農祭)를 지냈으며, 가뭄이 심할 때는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던 곳이다. 선농제를 올린 뒤에는 선농단 동남쪽에 마련된 적전(籍田)에서 왕이 친히 밭을 갈아 백성들에게 농사일의 소중함을 알리고 권농에 힘썼다. 이때 농부들 중에서 고령다복한 사람을 뽑아 임금을 도와 같이 밭을 갈게 하였다. 이 친경(親耕) 행사는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대한제국 순종|순종]] 융희 3년([[1909년]])까지 계속되었다. 현재 선농단에는 가로 세로 4m의 제단과 문인상만 남아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크고 오래된 [[서울용두동서울 선농단의선농단 향나무|향나무]]가 있다.
 
== 선농제의 재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