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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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前漢)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사기 (역사서)|사기]](史記)에도 비슷한 기술이 있어, 공자가 [[노나라]](魯)의 역사서인 원본 춘추에 자신의 글을 첨가하여 춘추를 지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전한시대 춘추학에서는 오로지 춘추에서 공자의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을 근거하는 공양학이 융성하였다.
신나라를 거처거쳐 후한(後漢)이 건국된 이후에 공자를 주공(周公)의 조술자(祖述者)로 하는 고문학이 융성하였고, 춘추좌씨전에 을 그 것을 해석하는 학문이 나타났다. 춘추를 주공의 전통을 계승했던 노나라의 사관이 쓴 노나라의 사기를 그 자체를 보고는 공자는 말하였지만 적지 않았다는 것을 조술했다고 하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되었다.
당나라 시대가 되자 유지기(劉知幾)의 사통(史通)으로 시작으로 춘추를 의심하는 주장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북송의 왕안석(王安石)은 춘추의 내용은 공자의 숨은 의미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단순한 문장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공자의 숨겨진 의미를 찾겠다면서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