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 청동은입사향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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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정보
| 소재_국가 = {{KOR}}
| 유형 = [[대한민국의 보물|보물]]
| 그림 =
| 이름 =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 <br /> (奉恩寺 靑銅銀入絲香垸)
| 지정_번호 = 321
| 지정연월일 := 1963년 1월 21일
| 해지연월일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55 <br /> 불교중앙박물관
| 소유자 = [[봉은사]]
| 좌표 =
| 제작_시기 = [[고려 충혜왕]] 5년([[1344년]])
| 규모·양식:비고 = 높이 0.37m, 지름 0.5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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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청동은입사향완'''(奉恩寺 靑銅銀入絲香垸)은 대한민국 보물 제321호이다.
==정보==
 
'''지정4년명고려청동루은향로 至正四年銘高麗靑銅鏤銀香爐'''
▒ 지정번호 : 보물 제321호
▒ 지정연월일 : 1963년 1월 21일
▒ 시 대 : 고려시대, 충혜왕 복위 5년(1344)
▒ 규모·양식: 높이 0.37m, 지름 0.51m
▒ 재 료: 종이
▒ 소 유 자 : 봉은사
▒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 3가 26 동국대학교박물관
지정4년명고려청동누은향로는 고려시대에 중흥사(重興寺)에 봉안되었던 향로로, 현재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奉恩寺) 소장이며 동국대학교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중흥사는 북한산 노적봉 아래에 있던 절로서 조선 숙종 때 북한산성을 쌓은 뒤 그곳을 관할하던 도총섭(都摠攝)이 있던 큰절이었는데, 1915년 무렵에 폐사 된 듯하다. 봉은사가 중창되던 조선 명종 이후에 봉은사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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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둥이에 달린 전의 뒷면에 총 103자의 글씨가 역시 은사로 다음과 같이 입사되어 있다.
'至正四年五月 日 敬造靑銅鏤銀香爐一座奉獻于三角山重興寺大殿佛前 將此功德用祝皇帝万歲國王千秋天下太平同願僉議政丞蔡河中午山郡夫人梁氏徹明勸善比丘悟如眞悟戒瑚鏤手中郞將金卿願以此功德普及於一切我等與群生皆共成佛道'
이 명문을 통하여 이 향로가 고려 충혜왕 복위 5년(1344)에 만들어져 삼각산 중흥사 대웅전에 봉안되었음을 알 수 있다. 명문에서 특히 주목되는 점은 이것을 일러 '향로(香爐)'라고 지칭한 점인데, 향로라는 명칭이 최초로 사용된 예가 된다. 이전에는 향로라는 말 대신에 향완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또한 이 향로를 시주한 사람으로 채하중(蔡河中, ?∼1357)과 그의 부인 양철명(梁徹明)의 이름이 나오는 것도 중요하다. 채하중의 주된 행적은 {고려사}에 보이는데, 중국 원(元)의 세력을 등에 업고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으나 결국 나라를 어지럽혔던 인물이다. 충숙왕 6년(1319) 호군(護軍)이 되었고 충혜왕 3년(1342) 일등공신이 되었다가 충목왕 1년(1344) 평강부원군(平康府院君)이 되기도 하였으나, 1356년에 순천에 유배된 뒤 1357년에 자결하였다. 명문 가운데 또한 이 향로를 만든 누수(鏤手), 곧 장인(匠人)인 김경(金卿)을 비롯하여 여러 승려의 이름이 나오는 것도 자료적 가치가 있다.
 
== 참고자료 ==
* {{문화재청 문화재|12,03210000,11}}
{{서울시공개자료}}
 
{{대한민국문화재}}
[[분류:대한민국의 보물]]
[[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
[[분류:서울 종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