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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노르만의 침입, 이슬람의 침입을 겪는 동안 십자군이나 고딕 건축으로 대표되는 중세 봉건사회가 성립되었다. 오늘날 프랑스 남부에 해당하는 [[옥시타니아]] 지방의 이단 종파인 [[카타리파]]를 제거하기 위한 [[알비 십자군]]은, 1209년에 시작되었다. 십자군 원정의 결과로 카타리파가 제거되고 남부 프랑스의 독립이 좌절되었다.<ref>[http://www.time.com/time/magazine/article/0,9171,897752-2,00.html Massacre of the Pure]. Time. April 28, 1961.</ref> 1337년에는 [[흑사병]]이 처음으로 유행하기 시작하였다.<ref>[http://encarta.msn.com/text_761568934___117/France.html France VII. — History]. Microsoft Encarta Online Encyclopedia 2009. [http://www.webcitation.org/5kwcLOXgw Archived] 2009-10-31.</ref> 영국과 프랑스는 [[백년 전쟁]]에 돌입하였다.<ref>Don O'Reilly. "[http://www.historynet.com/magazines/military_history/3031536.html Hundred Years' War: Joan of Arc and the Siege of Orléans]". ''TheHistoryNet.com''.</ref>
 
[[위그노 전쟁|프랑스의 종교 전쟁]] (1562–98) 중에는 매우 유명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1572년 수 천명의 [[위그노]]들이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 사건에 휘말려 살해되었다.<ref>[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516821/Massacre-of-Saint-Bartholomews-Day Massacre of Saint Bartholomew’s Day]. Encyclopaedia Britannica.</ref> 잔다르크가 등장한 백년전쟁, 지리상의 발견, 종교개혁과 그에 따르는 분쟁을 거쳐 중앙집권이 거의 확립되었고, 절대 왕정은 [[17세기]] [[루이 14세]]의 통치 기간에 그 정점에 달했다. 이 시기에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수의 인구를 보유했으며, 정치, 경제, 문화 분야에 있어 유럽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부터 [[프랑스어]]는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국제 외교 무대에서 공용어가 되었다. [[계몽주의]] 사상의 대부분은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 생겨난 것이며, 18세기의 주요한 과학적 발전은 프랑스 과학자들이 성취한 것이었다. 게다가 프랑스는 아메리카와아메리카 (지금의 [[시카고]], [[밀워키]], [[디트로이트]], [[세인트루이스]], [[인디애나폴리스]], [[덴버]], [[캔자스시티]], [[오클라호마시티]], [[미니애폴리스]], [[뉴올리언스]], [[루이빌]], [[피츠버그]], [[클리블랜드]], [[신시내티]], [[토론토]]까지 차지하였다.)와 아프리카, 아시아에 걸쳐 많은 해외 식민지를 얻게 되었다.
 
===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