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란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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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란 전투에서 아서와 메드로(모드레드)가 전사하였다.
 
후대에 이르러 [[먼머스의몬머스의 제프리]]가 쓴 《[[영국의 연대기]](Historia Regum Britanniae)》와 두운시 《[[아서의 죽음]](Alliterative Morte Arthure)》에서도 캄란 전투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13세기 웨일스 설화인 《[[로나뷔의 꿈]](The Dream of Rhonabwy)》에서도 언급되었다.
 
캄란 전투가 벌어진 장소가 어디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몇몇 유력한 후보지가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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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에 따른 설명==
캄란 전투가 일어나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웨일스 지역의 민간 전승을 담은 《웨일스 전설집(The Welsh Triad)》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웨일스 전설집은 먼머스의몬머스의 제프리가 저술한 《영국의 연대기》의 기록을 받아들여 모드레드가 아서에 대항해 반란을 획책하였으며, 결국 왕위를 놓고 아서와 모드레드 간에 캄란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캄란 전투는 ‘브리튼 섬에서 벌어진 부질없는 3대 점투’ 가운데 하나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전설에 의하면, 아서는 유서 팬드래건의 아들로서 15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 즈음 성당 앞에 있는 이상한 바위에 [[엑스칼리버]]라는 이름의 명검이 꽃혀 있었으며, 마음이 순결한 사람만이 그것을 뽑을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아서는 그것을 힘들이지 않고 뽑아 왕으로 추대되었다. 왕위에 오른 아서는 주위의 적들과 싸워 이겨 국가를 부흥시켰고, 아름다운 [[귀네비어]] 공주와 결혼하게 되었다. 이러한 아서 왕의 원탁에 뛰어난 기사들이 몰렸는데, 그 가운데서도 ‘호반의 기사’ [[란슬롯]]은 그 뛰어난 무술과 숭고한 인격으로 해서 원탁의 기사 가운데 중심 인물이 되었다. 더욱이 그는 왕비인 귀네비어와 연인 사이가 되었다.
 
그 즈음 원탁의 기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 때 사용했다는 [[거룩한 잔]]을 찾으라는 중대한 임무가 부여되었다. 그 일은 오직 순결한 기사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퍼시발과[[퍼시벌]]과 보우후트[[보스 (원탁의 기사)|보스]] 그리고 개라해트가[[갤러해드]]가 찾아냈으나, 하늘로부터하늘에서 천사가천사들이 내려와 개라해트의갤러해드의 영혼과 거룩한 잔을 하늘로 가져가고 말았다. 그 무렵에 아서 왕이 없는 사이를 틈타 모드레드가 반란을 일으켰다. 아서 왕은 급히 전군을 이끌고 귀환하여 모드레드가 이끄는 반란군과 싸우게 되었다.
 
심한 격전 속에서 아서 왕은 모드레드를 창으로 찔려 죽였으나, 자기 자신도 또한 치명상을 입게 되었다. 아서 왕은 엑스칼리버를 호수에 던져 운명을 점쳐 보았다. 검이 잠긴 곳으로부터 요정의 손이 나타나 세 차례 검을 흔든 뒤 사라졌다. 잠시 뒤에 그 자리로부터 검은 옷을 걸친 요정의 여왕 세 명이 나타나, 작은 배에 아서 왕을 태우고 마법의 섬인 [[아발론]]으로 데려갔다.<ref>《세계문학사 작은사전》, 46페이지, 김희보, 가람기획, 2002년.</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