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안토니우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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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스는 251년에 [[하 이집트]] [[헤라클레오폴리스 마그나]] 근교의 쿠마에서 부유한 토지 소유주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가 약 18세 쯤일 때, 그의 부모가 죽었고 그는 미혼인 그의 누나에게 맡겨졌다.
 
그와 돼지와 연관되는 많은 전설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한 때한때 그가 [[양돈인]]으로 일했다고 한다.[http://www.h-net.org/~nilas/seasons/stanthony.html][http://saints.sqpn.com/saint-anthony-the-abbot/][http://users.netnitco.net/~legend01/pig.htm]
 
285년에, 그의 나이 34세 때, 그는 복음적 권고의 일부인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ref>마태오 복음서 19장 21절</ref>라고 한 [[예수]]의 말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안토니우스는 가문의 소유지의 일부를 그의 이웃들에게 거저 주었고, 남은 재산을 팔아 빈자를 위한 기금에 기부했으며, 그의 누나가 그 당시의 최초의 수녀회의 일종인 [[봉헌처녀|그리스도교의 처녀]]단의 일원이 되게했고,<ref>Athanasius of Alexandria, Life of Antony, 3. In ''Early Christian Lives'', Carolinne White, trans. (London: Penguin Books, 1998), p. 10.</ref> 그 스스로는 지역의 은수자의 제자가 되었다.<ref name="Butler's">Burns, Paul, ed. ''Butler's Lives of the Saints:New Full Edition'' January vol. Collegeville, MN:The Liturgical Press. ISBN 0-8146-2377-8.</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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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어느 날에, 그는 주민들의 도움으로 그 요새로부터의 문을 허물었다. 그 무렵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그 혼자의 유폐로 쇠약해졌거나 미쳐버렸을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그는 건강하고, 평온하며, 개화되어 나타났다. 모든 사람들은 그가 시련을 통해 영적으로 활기를 되찾은 등장에 놀라워 했다. 그는 영웅으로 찬사를 받았으며, 그 이후부터 안토니우스의 전설이 확산되며 확대되기 시작햇다. 안토니우스는 [[파이윰]]으로 가서 [[그리스도교]]의 신앙에 있는 교우들을 확인한 다음에, 그의 옛 로마 요새로 되돌아갔다. 그는 [[그리스도]] 때문에 투옥된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을 위로했다. 총독은 그가 그에게서 일어날 법한 일은 개의치 않고 공공연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는 것을 보고, 그가 도시에 나타나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 성인은 그의 위협에 유의치 않았다. 이 성인이 총독을 만났는데, 그가 그의 분노를 돋굴 수도 있도록 그를 반박하므로, 이 성인은 고문당하고 순교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박해 끝에 그는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로마의 옛 요새로 되돌아갔다. 거기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 그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찾아왔다. 그는 그의 예배를 멀리하는 방문객들을 보았다. 그 결과, 그는 [[이집트]]의 [[동부 사막]]으로 더 들어갔다. 그는 샘과 종려나무 몇 그루를 찾을 때까지, 3일 동안 깊은 광야를 여행했는데, 샘과 종려나무 몇 그루를 발견하고 거기서 정착하기로 결정했다. 그 자리에 오늘날의 성 대 안토니우스 수도원이 있다. 거기서, 그는 약 200년 뒤에 있을 [[누르시아의 베네딕토]]의 규칙을 예견했고, 스스로 그리고 그의 제자 또는 제자들을 수공일에 참여하게 하여 "기도와 일"을 했다. 안토니우스는 스스로 뜰을 경작하고 [[등심초]] 깔개를 짰다. 그와 그의 제자들은 정기적으로 계몽의 말을 찾게 되었다. 그러한 언사들은 저서 [[사막 교부들의 고담집]]으로 집성되었다. 안토니우스는 더 세속직인 방문자들을 [[알렉산드리아의 마카리우스|마카리우스]]에게 보내는 일을 떠나서, 스스로 자신으로서 영적인 성향에 대해서 말했다고 한다. 가끔, 그는 교우들을 만나러 [[나일강]] 사막의 외곽에 있는 한 수도원으로 간 다음에, 사막 내에 있는 그의 수도원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콘스탄티누스 1세]]에게 직접 전해진 잔존하는 서신들 중 하나의 배경 내용은 성 안토니우스의 명성이 어떻게 국외로 전파되었고 황제 콘스탄티누스에게 도달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황제는 그에 대한 찬사와 그를 위한 기도를 묻는 글을 작성했다. 교우들은 황제의 편지에 만족햇지만, 안토니우스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았으며, 그는 그들에게 "하느님의 책들, 왕들 중에 왕 그리고 영주들 중에 영주가 날마다 우리에게 명령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무엇을 유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교회를 사랑한다."라고 그에게 말한 교우의 고집으로 인해, 그는 황제를 축복하고 제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기도하는 편지를 작성해야함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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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굴의 악마 ===
한 때한때, 성 안토니우스는 그를 괴롭히는 악마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동굴에 숨으려고 하였다. 동굴에는 많은 작은 악마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성 안토니우스를 죽도록 때리고 있었기 때문에, 성 안토니우스의 하인이 그를 밖으로 옮겼다. 은수자들이 성 안토니우스의 죽음을 애도하려 그 시신으로 모여들었을 때, 그가 소생되었다. 그는 그의 하인에게 악마들이 그를 구타하던 동굴로 데려갈 것을 요구했다. 그가 거기서 악마에게 소리쳣을 때, 그들은 그를 갈기갈기 찢으려 야수들로 돌아왔다. 갑자기, 환한 빛이 번적이더니, 그 악마들이 도망쳤다. 성 안토니우스는 그 빛이 하느님으로부터 왔음을 알고, 그는 전에 어디서 악마들이 자신을 공격했는지 물었다. 하느님은 대답했다. "나는 여기에 있지었만, 나는 그대의 전투를 보곤 했는데, 견딜 수가 없었고, 당신이 그 전투에서 남자답게 싸우며 잘 견뎠으므로, 나는 그대의 이름이 온 세상에 두루 퍼지도록 할 것이다."<ref>http://www.catholic-forum.com/saints/golden153.htm</ref>
 
== 시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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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ons category|Saint Anthony the Great}}
* [[파일:Wikisource-logo.svg|12px]] {{백과사전 인용| 백과사전이름=Catholic_Encyclopedia| 제목 =St. Anthony, Abbot|url=http://en.wikisource.org/wiki/Catholic_Encyclopedia_(1913)/St._Anthony,_Abbot |위치=New York |출판사=Robert Appleton Company |연도=1913}}
* [http://www.dts.edu/media/play/?MediaItemID=6a05fb4b-4448-4092-bc26-aafc8cf6da66&audio=true 교회 역사가 앤드류 월스가 안토니의앤서니의 이야를 전하는 동영상]
* [http://ocafs.oca.org/FeastSaintsViewer.asp?SID=4&ID=1&FSID=100216 하느님을 지닌 공경하는 교부 대 안토니우스] 정교회 [[성화상]]과 [[성인전]]
* [http://www.copticchurch.net/synaxarium/5_22.html Coptic ''vita'' of St. Anthony the Gre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