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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이나 [[실학]] 외에도 [[도교]]와 [[노장 사상]]까지도 두루 수용하였다. 그러나 [[천주교]]만큼은 이단사상(異端思想)으로 간주하여 배척에 앞장섰다. 양반과 상민의 존재를 부정하고, 천당과 지옥이라고 하는 것을 들먹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거짓으로 사람들을 속인다는 것이 그가 [[천주교]]를 비난하는 이유였다. [[천주교]]의 전파가 평민과 노비 외에도 사대부가의 여성들에게까지 전파되는 등 사회문제가 되자 그는 [[1785년]](정조 9) 《천학고 天學考》와 《천학문답 天學問答》 을 저술하여 [[조선 정조정조]]에게 바쳤다. 《천학고》와 《천학문답》에서 그는 천주교의 내세관(來世觀)이 지닌 현실부정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 비판하였다.
 
제자이면서 사돈인 [[권철신]]과 사위이자 [[권철신]]의 동생인 [[권일신]](權日身)이 [[천주교]]에 호의를 보이자 이들에게 수많은 서찰을 보내 [[천주교]]에 빠지지 말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에게 천국과 지옥의 존재와 양반 상민의 계급을 부정하는 것은 곧 일체의 반질서적인 사상으로 간주되었다. [[실학]]사상은 인정되지 않았으나 [[천주교]]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것만큼은 정주학으로 재무장한 [[노론]] 독주의[[벽파]] 정권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 만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