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마 산장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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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마 산장 사건'''({{ja-y|浅間山荘事件|あさまさんそうじけん|아사마 산소 지켄}})은 [[1972년]] [[2월 19일]] [[일본]] [[나가노 현]] [[기타사쿠 군]] [[가루이자와 정]]에 있는 [[가와이 악기]] 소유의 사원용 휴양시설인 아사마 산장에서 [[일본 적군일본적군]]의 일부 세력인 [[일본적군#연합적군 형성|연합 적군]]이 일으킨 사건을 말한다. 일본 연합 적군의 다섯 조직원([[사카구치 히로시]], [[반도 구니오]], [[요시노 마사쿠니]], [[가토 미치노리]], [[가토 모토히사]])이 아사마 산장의 관리인의 배우자를 [[인질]]로 하여 10일 간 산장에서 경찰과 대치하였는데 인질은 약 219시간 정도 감금되었다가 모두 무사히 풀려났으며, [[일본]]에서 [[경찰]]과 대치 중에 일어난 인질 사건으로 인해 인질이 감금된 시간 기록에서는 가장 긴 기록으로 남아 있다.
 
당시 상황은 모두 [[텔레비전]]으로 중계되었다. 당일 일본 내 총 세대 시청률은 조사 개시 이래 최고의 수치를 기록하여 [[JST]] 오후 6시 26분 경에는 [[일본방송협회|NHK]]와 기타 민방을 합쳐 [[간토 지방|간토]] 기준 89.7%를 기록하였다.<ref>히키다 소야 (2004년), 《전기록 텔레비전 시청률 50년 전쟁-그 때 1억 명이 감동하였다》 , [[고단샤]], 118쪽</ref> 같은 날 NHK의 특보 프로그램 (9시 40분부터 10시간 40분 동안 방송)은 평균 50.8%의 시청률을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