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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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호 (토론 |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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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페트라셰프스키]] 주재의 이상적인 [[사회주의]] 모임에 참가하여 당시 불온문서로 간주되었던 [[벨린스키]]의 <고골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한 것이 원인이 되어 [[1849]]년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다. [[사형]] 판결을 받은 후 [[총살]]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황제]]의 명으로 특별 사면되어(이 일련의 특사는 모두 계획된 것이었다.) [[시베리아]]에 유형을 가는 것으로 감형되었고, [[옴스크]]에서 [[1854년]]까지 [[유배]] 생활을 하였다. 이 시기의 체험을 바탕으로 나중에 《[[죽음의 집의 기록]]》를 펴냈다. 그 밖에도 《[[백치]]》 등의 작품에 [[사형]] 집행 직전의 심정을 묘사하는 등 이 사건은 그의 작품 세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옴스크 감옥에서 4년간의 형기를 마치고 군대에서세미팔란치스크 수비대에서 4년 간 사병으로 근무한근무하게 된다. 이 때 첫 번째 부인 마리야 드미트리예브나 이사예바를 만나 결혼한다. [[1858년1859년]]에 [[페테르부르크]]로 귀환한 뒤 다시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무렵에 이상주의적 [[사회주의]]자에서부터 [[기독교]]적 [[인도주의]]자로의 사상적 변화를 겪었다.
 
=== 문학 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