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페이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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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겐페이 전쟁]]은전쟁은 조정의 주도권 둘러싼 수십 년간의 다이라씨와 미나모토씨의 갈등이 폭발하여 발생한 것이다. 미나모토씨는 이전에도 [[호겐의 난]]과 [[헤이지의 난]]에서 다이라씨에 도전했으나 실패했고, 패한 미나모토 씨의 유력인물들은 다이라씨에게 처형되었다.
 
1177년 다이라씨와 퇴위하여 섭정을 맡고 있던 [[고시라카와 천황|고시라카와 상황]]과 갈등이 깊어졌으며, 고시라카와 상황은 쿠데타로 [[태정대신]]인 [[다이라노 기요모리]](平清盛)를 축출하려 하였다. 기요모리는 이 시도를 분쇄하고 [[인세이]](즉 상황에 의한 섭정)을 폐하였다. 이때문에 다이라씨에 대한 반감이 증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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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미나모토 씨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사촌 요시나카의 의도를 의심했고, 요시나카를 몇번 공격하였다. 요시나카는 요리토모에게 영지를 바치고 요리토모의 주도권을 확인하여 둘은 가까스로 힘을 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동의 적인 다이라 씨에 대항해 함께 사우면서도 미나모토 집안의 주도권을 둘러싼 요리토모와 요시나카의 경쟁 의식은 결코 없어지지 않았다. 요시나카는 요리토모에가 아들 요시타카를 인질로 가마쿠라에 있는 요리토모에게 보냈다. 그런 한편으로 요시나카는 스스로의 힘만으로 다이라 씨를 격파하고 교토에 입성하여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려고 하였다.
 
미나모토노 요시나카는 [[다이라노 고레모리]](平維盛)와 대결하여 첫 번째 전투에서는 가까스로 살아남았으나 두 번째로 맞붙은 [[구키하라 전투]]에서는 대승하였다. 이 전투는 [[겐페이 전쟁]]의전쟁의 전환점으로 불리며 이 전투에서 다이라 씨는 요시나카에게 크게 패하여 사기는 땅에 떨어고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몇달 후에 다이라씨는 교토를 근근히 지키고 있었고, 요시나카는 동북쪽으로부터 유키이에는 동쪽으로부터 교토를 포위하고 있었다. 이 둘의 군대는 거의 저항을 받지 않고 교토로 입성했고, 다이라씨의 수장인 무네모리는 교토를 버리고 안토쿠 천황과 함께 천황가에 내려오는 [[삼종신기|3종의 신기(神器)]]를 가지고 혼슈와 시코쿠에 있는 자신들의 본거지로 피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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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미나모토 군이 다이라씨의 본성인 이치노다니를 공략하기 까지는 거의 1년이 걸렸다. 다이라씨는 시코쿠의 봉화를 보고 미나모토 군이 육지로부터 공격할 줄 알고 모두 배에 승선했다. 그러나 이는 기만술이었고, 미나모토 씨는 수군을 기다려 바다에서 다이라 씨를 섬멸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다이라 씨가 임시 황궁을 설치한 야시마는 함락되었고, 다시 다이라 씨는 안토쿠 천황과 함께 신기를 가지고 도망쳤다.
 
[[겐페이 전쟁]]은전쟁은 이로부터 한달 후 [[단노우라 전투|단노우라에서 벌어진 결전]]에서 결판이 난다. 미나모토의 수군과 다이라씨의 수군은 좁은 [[시모노세키]] 해협에서 맞붙었다. 처음에는 활과 화살의 싸움을 하다가 이후 육박전으로 전개되었다. 이 결전에서 항해술에 능한 다이라 수군은 해류를 잘 이용하여 처음에 싸움을 우세하게 이끌었다. 그러나 다이라 씨의 장군이었던 [[다구치 시게요시]](田口重能)가 미나모토 씨쪽으로 배신하여 안토쿠 천황과 신기가 있는 배를 말해주었다. 미나모토 씨는 이 배에 공격을 집중하였고, 전세의 흐름이 바뀌었다.
 
다이라 씨의 많은 사무라이와 안토쿠 천황, 그리고 그 할머니이자 [[다이라노 기요모리]]의 미망인인 도키코는 패배가 확실해지자 굴욕을 당하기보다는 죽기로 결심하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 이들과 함께 천황의 권력을 상징하는 삼종의 신기도 바다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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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모토 씨(또는 겐지 源氏)===
 
미나모토씨는 헤이안 시대의 4대 집안중 하나이다. 그러나 1160년의 헤이지의 난 이후로 다이라 씨에게 학살되어 세력이 매우 약해졌다. 미나모토노 요시토모는 당시 미나모토 집안의 우두머리였다. 요시토모가 [[다이라노 기요모리]]에게 패한 이후 두 아들은 살해되고,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는 추방되었다. 1180년 미나모토 씨는 다시 모치히토 친왕과 미나모토노 요리마사의 결의에 호응하여 다시 다이라 씨와 전쟁을 벌여 결국 [[겐페이 전쟁]]의전쟁의 승리로 다이라 씨를 멸망시키고 전국의 지배권을 얻었다.
 
*미나모토노 노리요리(源範頼) - 장수, 요리토모의 아래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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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라 씨 (또는 헤이케 平家)===
 
다이라 집안 또한 헤이안 시대를 주름잡은 4대 가문중 하나이다. 1160년 [[헤이지의 난]]에서 미나모토 씨를 학살하고 정권을 잡았다. [[다이라노 기요모리]]는 다이라 씨의 권력이 정점에 달했을 때 잔존한 미나모토 씨를 박멸하려고 [[겐페이 전쟁]]을전쟁을 시작했으나, 그 결과는 도리어 다이라 집안의 멸망이었다.
 
*다이라노 고레모리(平維盛) - 기요모리의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