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 (북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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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영'''(爾朱榮, [[493년]] ~ [[530년]] [[9월 25일]])은 [[남북조 시대]] [[북위 (북조)|북위]]의 장군으로, 자는 '''천보'''(天寶)이며 수용(秀容, 현 [[산서성]] [[숴저우 시]] 서남부와 [[신저우 시]] 북쪽의 경계) 북부 출신이다.
 
[[523년]] [[북위 (북조)|북위]]에서는 옥야진(沃野鎭) 백성의주민들의 거병이 있었다. 수령(首領) 파육한발릉(破六韓抜陵) 수령(首領)인지휘 아래 반란병들은 수비대장을 살해하였고, 이들의 움직임에 홀려 기타 여러 진들에도 전염되었다.([[육진의 난|6진의 난]])
 
결과적으로 이 반란자체는 [[530년]] 장군 이주영이 진압했으나, 그 후 [[북위 (북조)|북위]]에 대한 [[양 (남조)|양나라]]나라 군대의 침공이 있었고, 또한 국내는 정권을 장악한 이주씨 일파의 전횡이 일어나 북위가 동서로 분열하여 멸망하는 원인이 되었다.
 
영태후는 효명제를[[효명제]]를 독살하고 후계자를 세우지만 [[육진의 난]]의 진압 과정 중 대군벌으로 성장한 [[산서성]] 삭현[[숴저우 시|숴저우]] 지방의 흉노족 이주영이 군대를 이끌고 [[낙양]](洛陽)에 들어와 [[효장제]](孝莊帝)를 옹립했다.
 
이주영은 [[528년]] 태후와 후계자를 황하에 던져버리고, 승상이하 대신 1,000명을 처형하는 [[하음의 변]]을 일으켜 반대파를 제거하였고 6진의 난까지 평정하고 진양(晋陽)에서 조정을 움직였으나 휘하 장수[[고환 (북위) |고환]](高歡)이 그 폭정을 비판하여 이주씨와 대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