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릉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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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이인 (동음이의)}}
'''하릉군 이인'''(河陵君 李鏻, 1546년 - 1592년)은 조선중기의 왕손으로 [[조선 중종|중종]]의 손자이다. [[덕흥대원군]]과 하동부대부인의 둘째 아들이자 [[조선 선조|선조]]의 중형(仲兄)이었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일본군]]을 피해 피난하였으나 [[강원도]] [[통천군]]에 도착했다가 왜군이 통천에까지 진입하자 목매어 자결하였다.<ref name="sonsu26">선조수정실록 26권, 선조 25년(1592 임진 / 명 만력(萬曆) 20년) 10월 1일(정해) 8번째기사 "통천 군수 정구에게 통정 대부를 가자하다"</ref> [[임진왜란]] 중 사망하여 한때 시신이 유실되기도 했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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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의 서3남이자 이복 백부인 금원군(錦原君) 이영(李岭)에게 양자로 입양되어 하릉정(河陵正)에 제수받고, [[조선 선조|선조]]가 즉위한 뒤 대원군묘(大院君廟, [[덕흥궁]])에 친향(親享)을 하고, 특별 승급되어 현록대부 하릉군(河陵君)에 봉작하였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금강산(金剛山)으로 피난, 은신하였다가<ref name="sonsu26"/> 통천군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통천에도 왜군이 진입하였다. 이때 관북(關北)의 토적(土賊)들이 왜적을 인도하여 산을 수색한다는 말을 듣고 핍박당할까 근심하다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ref name="sonsu26"/>
[[1592년]](선조 25) [[6월 17일]] [[임진왜란]]때 통천군(通川郡)에서 향년 46세로 별세하였다. 효정(孝貞)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1592년]](선조 25) [[6월 17일]] [[임진왜란]]때 통천군(通川郡)에서 향년목매어 46세로죽었다. 사망 당시 향년 별세하였다46세였다. 효정(孝貞)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 사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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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전주 이씨]]
[[분류:조선의 정치인]]
[[분류:병사한자살한 사람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