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바르텔레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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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바르톨로뮤'''(Peter Bartholomew, ? ~ 1099년) 또는 피터 바르톨로뮤는 제 1차 십자군 원정중인 안티오크 공성전때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옆구리를 찔렀던 창이 안티오크의 대성당(쿠샨) 바닥에 묻혀 있다는 계시를 신으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한 사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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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바르톨로뮤(Peter Bartholomew, ? ~ 1099년) 또는 피터 바르톨로뮤는 제 1차 십자군 원정중인 안티오크 공성전때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옆구리를 찔렀던 창이 안티오크의 대성당(쿠샨) 바닥에 묻혀 있다는 계시를 신으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한 사제이다.
 
아데마르 주교는 그의 말을 의심하였는데 그럼에도 성당 바닥을 파보자 문제의 창의 일부라고 주장되는 조그만 금속 조각이 발굴되었다. 이로써 십자군의 사기는 크게 진작되어 1098년 6월 28일, 성 안에 포위되어 있던 십자군 병사들은 6개의 병력으로 나뉘어 돌파전을 감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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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프랑스 출신의 많은 사람들이 이제 피에르의 계시에 대한 불신감을 공공연히 드러냈다. 이 시점까지는 피에르에게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낮추어왔지만 이제는 드러내놓고 반대한 것이다. 몇몇 고위 성직자들이 피에르를 두둔하고 나섰다. 피에르는 자신의 계시가 신에게서 온 것이라고 정말로 믿고 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입증하기 위해 피에르는 불에 의한 시험을 받겠다고 제안했다. 그에 따라 그리스도의 수난일인 성금요일에 두 개의 불기둥 사이를 걸어가는 무모한 짓을 저질렀다. 이 무서운 시련을 끝마친 피에르는 끔찍한 화상을 입고 말았다. 커다란 격통에 시달리며 열하루 동안을 버티다가 다행스럽게도 죽음을 맞이했다. 그 사건은 십자군의 사기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피에르는 레몽과 상당히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으므로 불가피하게도 레몽은 이 사건으로 크게 신용을 잃고 말았다.
 
[[분류:1099년 죽음]]
[[분류:프랑스의 기독교]]
 
[[en:Peter Bartholom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