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S 프린스 오브 웨일스 (53):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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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5일에 처칠수상의 강력한 요청으로 일본군남하의 저지를 위해 프린스 오브 웨일스의 파견이 결정되었다. 11월 28일에는 [[콜롬보]]에 도착, 12월 2일에는 아군 전함 [[리펄스]]와 함께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동양함대의 기함으로 토마스 필립스 중장의 지휘하에 들어갔다. 항모 인터미터블과 합류할 예정이었으나 항모가 자메이카를 빠져나온 직후 좌초했기 때문에 합류하지 못했다. 그를 대신할 항모 허미스(Hermes)도 속도결여로 인해 배치되지 못했다.
 
동양함대가 이런 최신전함을 지닌 전례가 없었고, 독일과 전쟁수행중에, 개전초기로 보였다곤 하지만 주력함을 동양에 배치한건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처칠과 영국군은 웨일스 및 리펄스로 일본군의 남하를 저지 또는 단념시킬 목적으로 배치된 것이다. 이런 관점은 완전히 빗나간 것은 아니었다. 처칠은 영국해군이 비스마르크 한 척에 놀아나고 더욱이 자매함 [[티르피츠독일 전함 틸피츠|틸피츠]]가 전략상 커다란 장애물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또 역사적으론 개전직전 시점에선 일본해군이 보유한 [[나가토급 전함]]이외의 전함에 대해 웨일스가 명백히 뛰어난 존재로, 나가토형이나 이세형(신형전함은 생각 외였지만 그걸 포함한다 쳐도)은 미 태평양함대의 주력전함부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분리파견을 하지 않고서야 웨일스에 대항할 전력이 없을 터였다. 더욱이 중순전함 정도의 수상전력으론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 대항할 수 없으며 일본군의 육상부대 수송엔 대항을 위해 반드시 전함의 호위가 필요([[미쓰비시 A6M 영식 함상 전투기|제로전투기]] 같은 당시의 상식을 뛰어넘는 항공전력은 고려하지 않았다.)했다고 생각했으므로 이를 조달할 수 없는 일본군은 말레이반도에서 작전수행이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시의 상식으론 행동 중인 전함이 항공기의 공격으로 격침될리가 없었다.([[야마모토 이소로쿠]]조차 말레이해전 당시 "리펄스는 잡을 수 있겠지만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무리일듯하다"라고 이야기했다.)
한편 그 방면의 공략을 담당했던 [[곤도 노부타케]]의 제2함대는 공고급 고속전함 2척(공고, 하루나)을 중심으로 하였는데, 주간화력으론 분명 동양함대보다 열세로 야간에 활로를 찾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단 일본군이 특히 경계했던 건 프린스 오브 웨일스보다도 38cm포를 지닌 리펄스의 아웃 레인지(Out Range)포격이었다. (실제로는 앙각(대포의 고각을 올림)차이로 인해 주포의 최대사정거리는 리펄스보다도 공고가 더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