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 (1946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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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주된 포지션은 [[포수]]였다.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고]]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팀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제일은행]]을 거쳤다. 국가대표국가대표팀 포수로서 이름을 날렸다. 현역 은퇴 후 [[1977년]]-[[1978년]] 모교의 감독을 역임하였지만 물러나고 잠깐 야구계를 떠나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제일은행]]의 평범한 은행원으로 7년을 일했다.
 
이후 [[1984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수석코치로 영입되어 [[김영덕 (야구 감독)|김영덕]], [[박영길 (야구 감독)|박영길]] 감독을 보좌하였다. [[1989년]]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데뷔하여 전력이 약화된 팀을 4위까지 올리고, [[1990년]]에도 정규시즌 4위로 마감하지만, 포스트 시즌의 플레이오프에서 그동안 번번이 삼성의 우승을 가로막았던 난적 [[해태 타이거즈]]를 격파했다. 그래서 [[1990년 한국 시리즈]]까지 오르지만 [[LG 트윈스]]에게 무릎을 꿇고 우승에 실패하여 삼성의[[삼성 라이온즈]]의 고질병이었던 [[한국 시리즈]] 징크스를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이 징크스는 [[2002년]]에 깨졌다)
 
이후 [[한국 시리즈]] 우승 실패의 책임을 물어 해임당하고 [[미국]]으로 야구 연수를 떠났다가 [[1992년]] [[태평양 돌핀스]]의 감독으로 영입되었다. [[1992년]] 6위, [[1993년]] 최하위로 마감했지만, [[1994년]]에는 그동안 부상으로 신음했던 투수들이 복귀하여 정규시즌정규 시즌 2위로 마감하는 선전을 하였다. 그 해 [[태평양 돌핀스]]가 [[LG 트윈스]]에게 [[1994년 한국 시리즈에서시리즈]]에서 패해 [[LG 트윈스]]가 우승했지만, 그 해 성적은 [[1998년]] [[현대 유니콘스]]가 우승하기 전까지 [[인천광역시]] 연고 야구단 최고의 성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감독으로 2번 경험한 [[한국 시리즈에서시리즈]]에서 모두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스윕당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1995년]]에는 시즌 7위로 마감했고, [[태평양 돌핀스]] 야구단이 현대그룹에 매각되었을 때 수석코치 [[김재박]]에게 감독직을 넘겨 주고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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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야구 해설가, [[한국야구위원회]] 경기감독관으로 일하고 있다.
 
[[삼성 시절라이온즈]] 재임 시절에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팀 분위기를 만들었으며, [[태평양 돌핀스]] 시절에는 [[김시진]]을 투수코치로 영입, 투수 조련에 힘써 [[태평양 돌핀스]] 때부터 "투수 왕국"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1990년대 후반 태평양을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 전성 시대의 기초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 바깥 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