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음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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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메트의 이슬람교국(敎國) 창립(622)까지의 자연숭배나 우상숭배를 했던 무명시대(無明時代)에도 아랍 음악은 물론 있었다. 유목생활 가운데서 원시적인 노동의 노래나 제전음악(祭典音樂)이 발생했으나, 일찍부터 선진 문명국인 헤브라이와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았다. 이어 데헤자스 지방(홍해와 마주한 반도 북서부)을 중심으로 상업이 번성하여 대상(隊商)의 활동이 융성해짐에 따라 노래(후다)가 발생했다. 2, 3세기에 왕국이 남북에 건립, 궁정에서 직업 음악가나 무희(舞姬)가 활동하고, 또한 악기 하나로 각지를 돌아다니는 음유시인(吟遊詩人)이 중요한 구실을 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후세의 아랍 음악인은 이 시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아랍인이 메소포타미아나 시리아까지 번짐과 동시에 성지(聖地)를 쫓겨난 유태인이 반도의 서해안에 남하하여 헤브라이 음악이 들어오게 되었다. 또한 사산조(朝) 페르시아(3-7세기)의 음악도 크게 채택되었다. 나슈브(戀歌), 라사(哀歌), 카시그(讚歌) 등의 시(詩)가 생겨났으며, 시인이 작시·작곡을 겸하였다.
--[[사용자:Arogixas|Arogixas]] ([[사용자토론:Arogixas|토론]]) 2012년 3월 24일 (토) 03:04 (KST)=== 이슬람 시대의 아랍음악 ===
622년의
==== 융성기 ====
이슬람교에서는 음악을 금제(禁制)의 하나로 삼기 때문에 종교음악은 끝내 생겨나지 못했다. 그러나 세속음악은 궁정·귀족·부호 등의 보호 아래 교의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행하였다.
==== 전성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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