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하타 기요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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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 ===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니혼 TV 방송망|니혼 TV]]와 [[스포츠 닛폰]]의 야구 해설위원을 역임했고 1993년부터 나가시마 감독(제2기)이 이끄는 요미우리의 타격 코치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1993년 시즌에 팀은 리그에서 가장 저조한 타격 성적을 기록하면서 코치로서의 지도력에 대한 비판을 받았다. 자유 계약 선수가 된 고마다 노리히로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요코하마 베이스타스]]의 이적을 둘러싼 나카하타와의 마찰을갈등을 빚은 소문이 일어난일으킨 적도 있어 나카하타보다 타자로서의 실적이 격상되었던 [[오치아이 히로미쓰]]가 FA로 입단한 것에 의해 존재감을 내지 못하고 코치로서의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 채 그대로 시즌을 마쳤다. 그런데도 1994년에는 1루 베이스 코치를 담당해 분위기 메이커의 역할을 관철하면서 [[1994년 일본 시리즈|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1994년 시즌 종료 후 요미우리 코치직에서 물러나 다시 니혼 TV의 야구 해설위원과 스포츠 닛폰의 야구 평론가로 활동했다.
 
2004년에는 [[2004년 하계 올림픽|아테네 올림픽]] 일본 국가대표팀의 수석 코치를 맡았지만<ref>[[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한 나가시마 시게오 감독이 병상에서 팀의 지휘를 맡았는데 감독 대행이 아닌 어디까지나 수석 코치이며, 이후 강연 활동을 통해서 감독 대행이라는 직함을 갖고 싶었다고 발언했다.</ref> 본선에서는 [[국제 올림픽 위원회]]의 규정에 의해 나가시마 감독의 등록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감독으로 임명하면서 팀의 동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해 요미우리로부터 비공식적으로 조감독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