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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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서부 [[베스트팔렌]] 주의 [[오스나브뤼크]]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18세 때 사범학교 재학 중 [[제1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여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서부 전선 이상 없다>로 일약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이 소설은 그 후에 씌어진 <귀로>와 함께 전쟁에 대한 증오를 잘 그려낸 뛰어난 작품이다. 반전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여러차례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그는 또 [[제2차 세계대전]] 때의 [[파리 시]]를 무대로, 한 망명객의 불안과 절망을 묘사한 <개선문>을 발표하여 다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스]]가 정권을 잡자 더 이상 독일에 있지 못하고, [[스위스]]의 [[로카르노프랑스]]로 망명했다가망명했고, 2차대전이 터지자 [[미국]]으로 다시 망명하였다. 전쟁이 끝난후 스위스에 정착했다.
 
그는 또 [[제2차 세계대전]] 때의 [[파리 시]]를 무대로, 한 망명객의 불안과 절망을 묘사한 <개선문>을 발표하여 다시 이름을 떨쳤다. 이 소설은 자전적인 소설이다.
[[1947년]]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으나, 이듬해 스위스로 돌아왔다. [[1958년]]에는 미국의 여배우 [[폴레트 고다드]]와 재혼하였으며, 로카르노에서 7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