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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다윗왕의[[다윗]]왕의 아들 솔로몬이[[솔로몬]]이 죽은 후 그의 왕국은 남쪽의 유대왕국과[[유대왕국]]과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의왕국]]의 여섯번째 왕인 [[오므리]]가 원래 "''세멜''"(세멜이 개인인지 어떤 부족인지는 확실치 않다)로부터 이 지역을 은화 두달란트에 사들여 사마리아라는 도시를 세우고 그곳을 수도로 삼았다. (기원전 884년경) 이 도시는 바위산의 정상에 세워졌는데 고대의 포도주와 기름의 생산지로 현대의 고고학적 발굴에의해 실체가 확인되었다.
 
북이스라엘 왕국의 마지막왕인 [[호세아]]왕 때 [[앗시리아]]가 사마리아를 침공해 도시를 점령하고 모든 사마리아 지역의 거주민을 앗시리아로 포로로 강제이주시켰고 바빌론과 쿠다(Cuthah)등지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사마리아에 거주시켰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자신들과 구별해 쿠다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쿳팀"'' 이라고 부르며 이는 경멸적이고 모욕적인 표현이다.)
 
이후 바빌론시대와 페르시아 시대를 거치면서 사마리아는 도시로 존재했고 [[기원전 332년]]경 수천명의 [[마케도니아]]병사들이 반란을 진압하러 와서는 그곳에 정착해 헬레니즘의 도시가 되었다. 그 시대에 성전과 거대한 도시성벽이 보강되었는데 [[기원전 108년]] 유대의 왕인 [[요한 히르카누스]]가 침공하여 성벽을 깨뜨리고 파괴하였다. [[기원전 63년]] 사마리아는 로마에 의해 [[시리아]] 속주로 병합되었다.
 
[[기원전 30년]] [[헤로데 대왕]]은 사마리아를 새로이 재건하여 크게 확장하고 도시 이름을 '''세바스테'''로 개명하고 [[아우구스투스]]에게 헌정했다. (세바스테라는 이름 자체가 [[그리스어]]로 아우구스투스를 뜻한다) 헤로데는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위한 웅장한 사원을 비롯해 약 4km 길이의 성벽과 요새를 새로 세웠으며 헬레니즘 도시의 특징을 유감없이 발휘한 대 사업이었다.
 
사마리아에는 세례자 요한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믿어져 왔고 나중에 세례자 요한을 위한 교회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분류:유대의 역사]]